의협 등 의료계 지도자, 종교지도자협의회와 간담회
"학생과 전공의가 정부 신뢰할 수 있는 계기 만들어져야"
8개월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해 '종교계'가 총출동했다. 깊어진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을 불식 시키기 위해 종교계가 중재에 나서기로 한 것.
대한의사협회는 22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 의료대란 사태 해결에 종교계가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대표자들이 포함된 조직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이 대표의장을 맡고 있다.
간담회에는 임현택 의협 회장을 비롯해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 박평재 고대의대 교수비대위원장,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최안나 기획이사 겸 대변인이 참석했다. 종교지도자협의회에서는 진우스님과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 최종수 성균광장, 윤석산 천도교 교령,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 자리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간담회 후 진우스님은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했으니 정부안과 비교해 상충되는 것들을 종교지도자들이 검토해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해 중재안을 하겠다"고 했다.
종교계도 정부 일방적 정책 추진에 "아쉬워" 지적
진우스님은 "예전에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계에서도 김수환 추기경, 강원영 목사 같은 원로급 어른들이 있었다"라며 "이들이 중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은 그런 분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종교지도자협의회도 국민을 위해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으니 정말 인간대 인간, 생명대 생명의 입장에서 논의를 해 중재를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라며 종교계가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보다 구체적인 중재안까지 준비 중인 상황을 전했다. 이용훈 의장은 "종교계에서도 성명서 또는 중재안을 냈는데 정부와 의료계 모두 양보가 필요하다는 거시적인 내용이었다"라며 "천주교주교회의 의견을 받아 단계는 좀 낮추지만 구체적인 안을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조금 더 신중하게 갔으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은 원광대병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계의 중재 역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 교정원장은 "종교지도자협의회가 나라 안에서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바가 있어서 중재를 할 수 있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도, 의료계도 일정 부분 양보안을 제시해야 좋은 방향으로 잘 정리해 국민에게도 이익이 돌아가고 의료계도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젊은의사들이 희망 가질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의료계는 일방적 정부 정책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이 희망을 잃었다고 진단하며 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중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의료계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잘 해결하고 싶다"라며 "종교계가 조금만 정부와 중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의사들, 그리고 국민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게 의료를 정상화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수 회장은 "정책을 추진할 때는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여러 가지 동인이 있어야 하는데 일련의 정부 정책은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라며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하니 젊은 세대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학생과 전공의에게 강요를 하거나 겁박하는 행동은 그들이 원위치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동인이 전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젊은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바라는지 정부가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제일 중요한 부분은 학생과 전공의가 정부를 신뢰하고 교수를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신뢰가 쌓이면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수의료 분야인 이식혈관외과 교수이기도 한 박평재 고대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당장 닥칠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박 위원장은 "겨울로 들어서는 환절기가 너무 걱정된다"라며 "겨울이 되면 심혈관계 질환, 뇌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이 급속도로 증가한다. 실제 중환자가 많이 증가하고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빈자리가 급속도로 채워지면 응급실에서 중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장은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상황이 됐다"라며 "의료계의 미래세대에 해당하는 젊은의사들이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