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정부를 향한 '불신'에 휩싸였다.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부를 어떻게 믿고"라는 불신이 팽배하다 못해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회장 불신임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선거로 뽑힌 박형욱 비상대책위원장은 일성으로 정부,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신뢰회복'이 먼저라고 했다. 현재 상황을 만든 원인과 책임은 정부에 있으며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를 향한 의료계의 뿌리깊은 불신은 나빠질 데로 나빠진 상황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반대하며 병원과 학교를 나간 전공의, 의대생들은 불신의 이유로 2020년의 경험을 꺼낸다. 당시도 전공의와 의대생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오는 등 투쟁의 선두에 섰지만 정부와 의협의 합의문 발표로 신뢰를 잃었다.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의대정원을 포함한 주요 의료 정책을 논의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합의문의 골자다.
합의문은 4년이 지난 현재 단순 종잇조각으로 바뀌었다.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이 일방적으로 이뤄졌으니 말이다. 그동안 의사들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오히려 강해졌다. 이런 여론 조성의 중심에는 정부가 있었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의료개혁'으로 포장하고 여론전에만 100억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썼다. 의료계 내부에 그나마 있던 의대정원 확대 긍정파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심리학자 케네스 토마스는 갈등 해결 방식으로 협력, 경쟁, 회피, 순응, 타협 등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협상 당사자들이 서로 원하는 바가 강력해 양보하기 어려울 때는 '타협'의 방식을 추천하고 있다. 다만, 타협을 하려면 대화가 필요한데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불신' 때문에 시간만 흘러갈 뿐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사도 국민이다. 의사는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존재가 국민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대로 규정하고 규제를 우선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의사가 특정 직역이고 국민 다수의 목소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억압하는 방식에서 정부의 폭력성을 봤다. 특정 직군이 제도 자체에 이토록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다면 '왜'인지 들어보고 이 목소리를 잦아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다.
다음은 심리상담가들이 제시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비난이 아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략 배우기 ▲과거 오해나 문제를 분명히 해소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불신 줄이기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고 유효하다고 받아들이며 비판이나 방어적 태도 대신 공감 표현하기 ▲정기적으로 대화할 시간을 정해두고 서로의 일과 감정,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신뢰를 깨뜨린 행동을 수정하고 일관성 있는 행동을 보이기 등이다.
반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있는 정부도 한번 들여다봐야 하는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쌓여있는 불신을 줄이기 위해 한발 물러선다고 정부가 내걸고 있는 의료개혁 의지와 내용이 희석되는 게 아니다. 불신이 지배하고 있는 의료계에서 분위기 반전은 정부가 해내야 하는 몫이다. 정부의 용기 있는 한 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