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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신년]미래 대비하자/한국의료의 빛과 그늘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한국의료의 빛과 그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4.02.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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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분당제생병원 이비인후과)

한국 의료의 빛과 그늘

국민건강 지킴이로 떳떳히 남기 위해…

 

오늘날 우리가 과연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는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아 가끔은 나를 울분케 한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 존엄성의 보장이며 개인자유의 확대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첫 요소는 바로 인간의 생명보장이며 우리나라 헌법에도 국민의 건강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치료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세계 경제력 13위, 지난해 국내 총생산 4천67억 달러라는 숫자들이 무색하게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며 시행한 전 국민의료보험제도 아래 보건의료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비용은 국가 총 재정의 5.4%(1999년 기준)에 이르고 있다. 전체 보건 재정중에 입원환자에게 사용되는 비용이 29%밖에 안되는 반면 약값에 사용하는 비용은 전체 30%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무척 높다.

이것은 약의 남용을 의사들의 과잉처방 탓으로만 돌릴 수 는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의료수준 또한 세계 58위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것은 태국, 말레이시아, 튀니지, 알바니아 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2003년도 의료보험 적자는 2조원이 넘었던 2002년도와 달리 의료분업 전 수준인 7천억을 다시 유지하게 되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의료보장 정책은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하고 생명을 지켜주느냐에 대한 노력보다는 의약분업 실시에 따르는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고, 재정 통합 실시 후 수입의 정도에 따르는 적정한 의료보험료 책정 방법 등의 기술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불필요한 문제들을 야기시키며 아까운 시간과 재정만 낭비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주체인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힘으로 제도를 실시하여 모순과 혼란만을 가중시킨 것이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의료는 기존의 급성질병치료에서 이제는 만성질환 환자들이 급증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아무리 보건 정책이 의사들의 허리를 졸라매어 의료 재정을 꾸려 나가려 한다 해도 증가하고 있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의료 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이에 맞서 국가가 선택한 길은 국민 부담을 적당히 늘려가는 방법으로 소비형태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고 의료행위에 대한 감시를 보다 철저히 하여 지출을 최대한 막아 보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의료 행위는 의사의 고유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 당시 개인이기주의에 물들여진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되었던 의사들은 가장 소중한 의료권 자체를 위협 받게 된 것이다.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을 위하여 국민의 일부인 의사 집단의 기본 권리가 양심의 가책 없이 무시 된 것이다.

의료수가의 인상이 물가 인상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2002년 OECD 한국의료보고서에서도 꼬집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나라 의사들이 정말 괴로워 하는 것은 돈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리가 5cm 찢어져서 외래로 왔을 때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군대 3년 갔다 온 외과의사가 꿰매면 실 값 빼고 한 7천원 정도 남지만 양복바지가 5cm 찢어져서 수선하러 가면 3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의의 꿈을 안고 온 가족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의대에 입학하여 한 학기 등록금만 해도 600만원에 가깝고 원서 책 값만 해도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6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에 군대 3년까지 합해 모두 14년 동안 뒷바라지를 해주시는 부모님 앞에 보일 수 있는 30대가 훌쩍 넘어버린 나의 모습이 바로 이런 비참한 현실이라는 사실 앞에 일부 의사들이 과잉진료와 편법진료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료의 현주소에 의사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그들의 자존심을 찾기 원한다.

'의술' 또는 '의료'라는 말은 의료서비스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불친절한 의사는 곧 '나쁜 의사'로 취급당하고 있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 서비스는 아예 법으로 금지 시키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일부 환자들은 웃음으로 맞이하는 호텔로비나 백화점의 아가씨들을 상기하며 간호사의 얼굴을 보고 본인이 지불한 액수만큼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의료진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원들은 연구와 후배 양성에 힘써야 할 교수진들을 외래와 수술실로 내몰 수밖에 없는 형편이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그저 뜻이 있고 경제력이 뒷받침되어 주는 극소수의 의사들에게 그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미 와 버렸다.

우리나라 의료가 올바른 길을 뒤늦게 나마라도 가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수가 인상으로 의사들의 자존심을 찾아줘야 한다. 물가인상과 비례하고 경제성장과 비례한 수가의 인상은 많은 부분 국가가 부담해야 할 것이며 물론 이런 부담 때문에 국민의 기본 건강권이 무시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피할 수 없는 사태로 언젠가는 다가올 것이다.

의료 시스템을 환자 위주로 바꾸고 의사들 또한 그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기본 권리를 인정하고 의사집단 내에서 동료의 진료에 대해 사후 평가, 감시하는 제도를 도입해 과잉진료와 오진을 가려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불필요한 정부 규제를 풀고 의료기관 설립, 운영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병원이 적극적으로 변화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1차, 2차, 3차 병원의 수가 차이를 넓히고 의료기관의 성격 및 의료진의 수준에 맞춰 수가를 차등화할 필요가 있겠다. 올바른 의료제도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의사들의 자존심을 찾아주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본 생명보장권을 국가 재정형편 보다 우선으로 생각 한다면 현재 직면해 있는 모든 문제들은 서서히 바른길로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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