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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희랍어에 산스크리트어까지…

라틴·희랍어에 산스크리트어까지…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7.09.1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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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석 교수(연세의대 의사학)

바야흐로 외국어의 시대다. 영어는 기본이고 최근에는 중국어가 영어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에다 제2외국어라 불리는 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 등 두세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여인석 연세의대 교수(의사학)도 프랑스어와 일어·영어 등을 원활히 구사하는 언어에 일가견이 있는 의학자다. 하지만 여 교수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영어·프랑스어·일어 뿐 아니라 라틴어·희랍어·수메르어·이집트상형문자·산스크리트어까지 그 관심의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이들 고대어들은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어려운 언어들이다. 더구나 현재 이를 사용하는 언중도 없다. 학문연구를 위해 살아남은 문자들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메소포타미아·그리스·인도 등에서 한때 사용됐던 언어들이며 시대적으로는 대부분 기원전에 쓰인 언어들이다.

여 교수가 이런 고대어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재 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자신의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여 교수의 고대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업무로 인한 필요성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그 본능에는 지식 탐구에 대한 순수한 욕구와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배어있다. 희랍어로 된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읽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고대 그리이스 철학자들을 연상케 한다.

여 교수의 언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출발점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아버지의 서재에서 일본인 '세끼구찌'가 쓴 독일어 문법책을 손에 잡게 됐는데 대부분 재미없어할 독일어 문법책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일어 공부가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는 라틴어까지 독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의대에 입학해서는 프랑스와 일어까지 공부하게 됐다. 거의 모든 사회과학서적이 볼온서적으로 취급되던 시기에 그나마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이 아니었다면 사회과학의 이론들을 접할 수 없었다. 독일어 공부가 순수한 재미에 의한 것이었다면 일본어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 언어에 대한 이런 관심이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사를 전공하게 됨에 따라 학문적인 필요와 접목됐다. 한국의 고대·중세 의학들을 연구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했고 유럽의 고대 의학사와 비교사, 교육사를 연구하며 희랍어와 라틴어·산스크리트어·이집트 상형문자·수메르어를 배웠다. 고대어를 가르치는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 서적을 어렵게 구해 독학을 하거나 '서울고전고대어연구소'와 같이 종교적인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고대언어 연구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고대어를 공부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원전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비롯해 수많은 고대 의학서들이 모두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한국어로 중역한 것이다. 당연히 원전의 의미가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여 교수는 고대 의학서들을 원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2년 전부터 희랍어로 된 10권의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번역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한국에서 희랍어로 된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문 상황이니 중역이 아닌 원전 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이다. 여 교수는 2년 후 히포크라테스 전집 중 4권의 번역 초고를 선보일 계획이다.

함무라비 법전 속 의료분쟁은?

세계 최고이자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00년에 쐐기문자인 수메르어로 기록돼 있다. 흔히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의료사고와 관련된 규정이 있었으며 의료사고에도 '눈에는 눈' 원칙을 적용한 것. 함무라비 법전 196~227조를 보면 외과수술을 통해 환자가 치유되면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만 죽거나 치유가 되지 않으면 의사의 팔을 자를 수 있게 규정해 놨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함무라비 법전의 이 규정으로 당시 주술이나 주문에 의존하지 않고 외과적 수술까지 했던 수메르의 수준높던 의학을 후퇴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의사들이 방어진료를 했기 때문이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 제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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