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시론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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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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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성(전 의협 법제이사 의학·법학박사)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는데도 외면해버리는 나쁜 사마리아인을 처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규정을 말한다. 그 유래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7절이다.

강도를 만나 옷가지와 소지품을 강탈당하고 큰 부상을 입어 거의 죽게 된 유대인 행인을 같은 부족인 유대인 제사장이 못 본 채 지나가고 레위족의 사람도 외면했다.

그러나 유대인과 적대관계에 있던 한 사마리아인(팔레스타인의 옛 수도 사마리아의 주민)이 그를 발견해 감람유와 포도주로 상처를 씻고 소독한 다음 자기의 짐승에 태워 여관에 데리고 가서 여관 주인에게 지속적 구호를 당부하고 자신의 여행을 계속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사마리아인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부당한 사람들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어도 될 것인가? 이는 세계법제사의 뿌리 깊은 쟁점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법률은 형법전 안에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마련해 놓고, 불구조자 혹은 구조 불이행자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주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의 형법엔 위험한 사람에 대한 구조행위로 자신이 위험해지지 않는데도 구조하지 않을 경우 처벌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애타주의와 인도주의 의무를 법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빠진 사람을 구조하다 본의 아니게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구조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응급의료법(17대 국회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 발의)에 명시돼 있긴 하지만, 구조를 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위난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는 '구조 불이행자', 즉 나쁜 사마리아인에 대한 처벌은 각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각 국의 윤리관과 문화적 전통 및 형사정책의 반영으로 보아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형법 제223~6조 제1항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함이 없이 타인의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중죄 또는 경죄의 실행을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이를 막지 아니한 자는 5년의 구금형 및 50만 프랑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제2항에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함이 없이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이를 구조하지 아니한 자는 전항과 동일한 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독일 역시 형법 제 323조C에서 '사고, 공공위험 또는 긴급상황 발생시, 필요하고 제반사정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구조, 특히 자신에 대한 현저한 위험 및 기타 중요한 의무의 위반 없이도 가능한 구조를 제공하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포르투갈·이탈리아·노르웨이·덴마크 등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조항을 채택하고 있다. 러시아·루마니아·헝가리·체코·슬로베니아 같은 사회주의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연방사회주의공화국 형법(1960) 제127조는 '만약 도움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위험이 없는데도,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하거나 즉시 분명하게 요구되는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나 혹은 관계기관이나 도움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6개월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 동안의 징계노동을 하거나 사회적 비난에 의해 처벌받을 것이며, 또는 사회적 압력조치의 적용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규정돼 있다.

폴란드 형법 제247조 '개인적인 위험에 처해 그 자신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구조할 수 있는데도 그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급히 구조하지 않은 자는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형에 의하여 처벌된다', 북한 형법 제138조도 죽을 위험에 처하여 있는 사람을 해당 기관 또는 관계자에게 알려주지 않았거나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방조를 주지 않아 그를 죽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북한 형법이 위험불고지행위와 구조거부행위 관련 조항을 '사회주의적 공동질서를 침해하는 범죄'의 한 유형으로서 설치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 형법에서는 이것을 유기죄로 취급, 보호책임 없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형법에 따르면 보호책임 없는 자에게도 유기를 하지 않아야 할 의무, 즉 구조의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구조불이행죄를 논의할 필요성이 없다.

그런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례에 사람들은 두 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나는 오늘날에도 피해자나 구조자 모두 이러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음을 망각하고 2000여년 년 전의 예화로만 생각하여 인간의 실존적 사건에 참여하지 못하는 복고주의적 오류이다.

다른 하나는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선적·도덕적 행동으로만 생각하는 낭만주의적 오류이다.

과연 이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적 의미가 있으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인간성의 한 측면인 연대성을 위배한 행위를 단지 윤리적인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형벌권의 발동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법의 성문화는 세계 각국이 점점 채택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발맞춰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냉혹하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상황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조항을 형법에 규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중심적 내용은 타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거나 보았을 때 자신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경우라면 타인의 위험을 제거해 주어야 할 구조의무이다. 형법은 도덕법전이 아니기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칭찬과 보상은 형법의 주된 관심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처우의 문제가 형법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형법에 따라 착한 사마리아인을 강제하는 것이 윤리의 법적 강제나 법 만능주의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형법의 자유화나 비범죄화의 논의 및 그 입법적 실현이 진척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규정을 유지하거나 새로이 규정하는 데는 분명히 그 나름의 법이론적·법정책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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