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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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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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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 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죽음을 처음 느낀 건 열 살때였다. 어느 날 밤 자다가 갑자기 깼다. 그리곤 울었다. 특별한 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죽음이 어떤 것인지 느꼈을 뿐이다. 자다가 그냥, 어느 날 내 주변 사람이 모두 떠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는 어찌 아셨는지 한밤중에 거실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들을 안아 주셨다. 나중에는 내가 혼자 울어도 날 안아줄 어머니가 안 계실 거란 생각에 더욱 슬퍼졌다. 그래서 더 울었다. 그렇게 울다 다시 잠이 들었다.

여태껏 죽음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 중 세상을 떠난 이가 없었다. 장례식장도 성인이 돼 처음 갔다. 친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친구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나 그게 어떤 느낌일지는 머리로만 상상했다.

죽음을 처음 본 건 인턴 때였다. 당직 시간, 카운터 파트 환자가 죽은 것 같다는 콜을 받았다. 암으로 오래 투병하던 환자는 소리도 없이 운명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가족들은 오열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이후에도 많은 죽음을 보았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병실에서.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랑 무관한 객체였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며칠 전 외조모가 운명하셨다. 1년여 암으로 투병하셨다. 운명하시기 며칠 전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 뵈었다. 처음 보자마자 외조모는 사망하기 직전의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며칠 못 가실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차이라면 그 전에 본 사람들은 객체였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내 외조모라는 것뿐.

장례를 치렀다. 처음이었다. 장례식장에 외조모의 영정이 걸려 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조모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외조모의 영정 앞에서 두 번 절을 올리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 한 절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3일간 장례를 치르고 외조모를 보내드렸다. 장례 기간 동안 사촌동생과 장난도 치고 다른 이들과 농담도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외조모는 가셨지만 나는 아직 외조모를 못 보내드렸다.

장례를 치르고 병원에 돌아왔다. 그리고 첫 당직날. 하루종일 수술을 하고 밤에 자려 누웠는데 응급수술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50대 초반 남성, 버스에 치여 응급실로 실려왔다. 골반뼈 골절, 복강내 출혈이 심했고 두개골 손상도 의심됐다. 혈압도 잘 잡히지 않았다. 바로 수술방으로 이동했고 외과에서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은 2시간가량 진행됐다. 혈압은 매우 안 좋았다. 수술이 잘돼 무사히 나간다 해도 뇌가 돌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수술하는 내내 신체 모든 구멍으로 피가 났다. 복강 쪽 출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두개골 손상으로 인한 출혈은 조절되지 않았다. 생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결국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동 후 사망했다.

수술 전 보호자에게 동의서를 받았다. 보호자로 온 것은 딸이었다. 앳되 보이는 20대 초반 여학생이었다.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하는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경황이 없어 보였다. 순간 외조모가 떠올랐다. 그 여학생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어떻게 다가올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승을 떠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 한없이 멀어보이는 죽음이 어느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땅의 모든 죽은 이와 죽을 이를 위해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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