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茶詩)
비바람이 쏟아지기 전 잠시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
눈꺼풀은 두툼한 암막으로 낮을 문지른다
찻잎들이 밤하늘 별처럼 쌓이고
흩어진 차향을 고원의 안개로 덮은 이 피난처에
우린 아프도록 걸쳐져 있다
흰 천을 끌어당겨 푸른색을 기다린다
성급한 채엽에 걱정인 나이지만
젊은이가 유품처럼 내놓은 잎사귀에 시름은 이내 사라진다
벗어놓은 외투 위로 증제(蒸製)된 연기가 고개를 들이민다
어떤 속을 채워보지도 못한 채 마중 나온 그 웅얼거림이 미안해서
매서운 바닷바람 속 말들을 밀어 넣기에 급급한 나
무릇 덖음이란 네 발효를 막으려는 방편이며
양손에 쥐고 비비는 것을 변색을 막는 유념*이라 함인데
숙우가 붉어지기 무섭게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린잎은 속이 깊은지 아무런 말이 없다
잠든 찾잔이 뒤척일 때까지
고개를 돌려서 나는 차를 꼭꼭 씹을 생각이다
*차의 제조공정에 있어서 비비는 조작
공중보건의사/2014년 <시와 사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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