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한 후배사랑, 저를 따를 자 있나요?

유난한 후배사랑, 저를 따를 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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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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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 회원(한림의대 내과 교수)

<유형준 회원>

이름

유형준(53)

소속

한림의대 한강성심병원 내과 교수

경력

1977

서울의대 졸업

 

1982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 내과 전공의 수료

 

1992. 5

문학예술 시·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1992~

한림의대 한강성심병원 내과 교수

 

2004~

대한노인병학회 당뇨병 및 노인내분비연구회장

 

2005~

대한비만학회장

 

2006~

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

 

"자신의 성공보다 후배들의 성장을 더 기뻐하는 스승님"
정인경 회원(경희 동서신의학병원 내과 교수)
유형준 교수님의 제자로 일할 수 있었던 건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유 교수님처럼 제자를 자신보다 아껴주시는 분도 드물거든요. 의학 교수로서의 역할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 교수님은 특히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많은 의미를 두셨습니다. 어쩌면 본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 보다 후배나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성공하는 것을 기뻐하셨으니까요.
후배 사랑이 얼마나 지극정성이셨는지 얼마 전 제가 교수님을 떠나 경희대로 옮겨 오는 날, 손수 시 한수를 지어서 선물해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제자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구구 절절히 스며 있었는데, 어찌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밑에 있던 제자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 당장 일이 힘들어지니까 무조건 반길 일만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교수님은 "정 선생한테 참 잘된 일이야. 정 선생은 꼭 성공할거야"라고 하시며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유 교수님은 비만학회장을 지내시며 당뇨병 분야에서 권위자로 꼽힐 정도로 학계에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깊이를 몸소 체험하시며 문학적인 소양도 뛰어나십니다.
학문이면 학문, 인품이면 인품, 모두 제자로서 빼놓지 않고 교수님을 닮아야 할 점들이지요. 지금도 선생님이 종종 생각이 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형준 교수는 막걸리 같기도 하고 와인 같기도 한 사람이다. 막걸리처럼 털털하고 소박하면서도 와인처럼 섬세함과 깊이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50대 나이 치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않으며, 손때가 묻은 낡은 가방을 여전히 아껴 드는 모습이나 누가보더라도 유 교수는 영락없이 소설 속에나 나올법한 고고한 교수의 이미지를 가졌다.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이 있다면 그의 교수실엔 어지럽게 책들이 쌓여있으리라고 상상했던 기자의 예상이 보기좋게 엇나갔다는 것이다. 책은 책장에, 책상에는 필요한 서류만큼만, 깔끔하게 정리된 소파 등은 절도가 느껴지는 와인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무엇이든 어지르길 좋아하는 기자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비결이 뭘까?

"이건 저의 방이 아니잖아요."

그의 방이 맞는 것 같은데? 다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그러고보니 벽에 한두개 쯤은 붙어 있을 법한 흔한 액자나 메모 따위가 없다. 두 평 남짓의 작은 방이었지만 어쩐지 넓어 보인다.

"지금은 제가 이 방을 쓰고 있지만, 저는 이 방을 거쳐가는 사람일 뿐이지, 이 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앞으로 10년, 20년 뒤엔 다른 사람이 이 방을 쓸텐데 최대한 깨끗하게 써야죠."

'공수래 공수거' 같은 명언을 교수실에도 적용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런데 듣고보니 꽤 그럴싸하다.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접이식 책상을 가져와서는 "이렇게 하니까 공간도 넓게 쓸 수 있고 깔끔하죠"라고 말하는 윤 교수를 보니 새삼 그를 다시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선배나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는 쉬워도, 후배나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유 교수가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데는 그만큼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교수의 역할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환자 진료와 연구와 교육이죠. 하지만 저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육자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에요. 의사란 doctor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그는 후배들의 잘됨이 자신의 보람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는 선배건 후배건 동료건 간에 자신의 뛰어남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데도, 그는 제자든 후배든 의사가 아니건 모두의 의견에 가치를 부여한다.

"의학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각각의 생명을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무엇이 진리라고 섣불리 생각하면 위험할 때가 많죠. 제가 교수이지만 틀릴 수도 있어요. 이건 내것이고 저건 네것이라고 정의하는 순간부터 충돌만이 남을 뿐입니다. 저는 그래서 후배든 제자든 선배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유 교수는 사람과 사람의 연(緣)에도 유난히 애착이 많다. 그 유난한 애닮음에 자신의 밑에서 수련하고 배우던 후배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때마다 그는 시를 한수 선물한다.

훌훌 태운다해도
어차피 숯이 되어/또 다시 그려지는
………
훅/스쳐간 소매
우연이라 우길지라도/소매 끝 숯 검댕이가/솔기 튿어진 실밥은 아니잖아요

-유담, '크로키' 중 일부-

정인경 교수에게 써줬다는 '크로키'란 시에는 후배와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스승의 심정과 후배를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특별히 선물해 줄 게 없더라고요. 좋은 인연을 만나 고마웠노라고 진심을 표현하는 길이 뭐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를 쓰게 된 겁니다. 다행히 후배들이 시를 보고 감명을 좋아한다니까 정말 기쁜걸요?"

와인을 닮았다는 말이 그에게 꼭 맞는다. 한편의 시를 읊는 감수성과 누구와의 인연이든 소중히 여기는 섬세함, 그리고 박학다식함과 굽힐 줄 모르는 소신까지……. 어쩐지 그와 와인을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기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유 교수가 술 한잔을 권한다.

그런데 아뿔사, 오랜만에 그가 격의 없이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친 후, 구성지게 뽑아내는 그의 흘러간 노랫자락을 듣노라니 언젠가 꼭 한번 곰삭은 막걸리를 같이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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