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공습…위험에 내몰린 국민건강 ⑤
의협신문·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공동기획
조용민(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환경건강분과 위원)
▶ 수은 ◀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한 생산활동의 부산물인 환경 오염물질은 결국 환경에 남는다.
버려진 환경 오염물질은 생태계를 파괴시켜 다시 인간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이러한 환경오염 물질의 순환과정은 환경오염 피해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양상이며 수은에 의한 건강 피해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세기 최악의 환경성 질환, 미나마타 병
수은이 유발한 질병은 1950년대 일본에서 발생한 미나마타 병이 대표적이다. 아세트 알데히드 등의 화학물질을 생산하던 미나마타 시의 신일본질소 회사는 아세트 알데히드 생산과정 중 화학반응 촉매로 수은을 사용했다.
당시 일본의 화학산업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이 회사는 미나마타 시 세금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번창했다.
그런데 1956년 한 소녀가 보행이나 대화가 힘들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이후 비슷한 증세를 가진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급증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근 미나마타 만에서 잡은 물고기를 많이 먹은 주민들이었고, 이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은 고양이들 역시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역학 조사 결과 질병의 원인이 회사가 방류한 폐수의 수은 성분으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발병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1959년 3월에는 2265명에 달했고, 이 중 1784명이 사망했다.
수은중독
마나마타 병은 체내로 들어온 수은이 배출되지 않고 남아 신경세포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수은중독 증상이다. 수은중독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1980년대 온도계를 생산하는 한 공장에서 과도한 수은 증기에 노출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故문송면 씨 사례이다.
수은중독은 식욕부진·두통·전신권태·손 떨림·불안 기타 정신이상 등이 주요 증상이다. 수은은 소량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피부가 팽팽해지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진시황은 이를 남용하다 수은중독으로 코가 썩고 정신병이 생겨 폭정을 거듭하다 무사들에게 살해됐다는 전설도 전해진다<사진>.
생활주변에 도사린 수은
일반인들은 직업적으로 고농도의 수은에 노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다양한 주변 생활환경에서 수은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에는 달라졌지만 과거에 사용하던 아말감(치과 재료)·형광등·체온계 등에는 수은이 들어 있었다.
수은이 함유된 화장품·약재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부주의로 체온계나 형광등이 파손되어 높은 농도의 수은 증기를 흡입하게 되면 급성 건강피해를 입을 수 있다. 체온계나 형광등에서 수은을 제거하지 않고 환경에 버리면 토양과 하천이 수은에 오염돼 수은피해를 입게 된다.
화석연료의 연소, 광산 활동 및 광석 제련 활동 등 산업활동에서 상당한 양의 수은이 배출된다. 폐기물 형태의 수은은 폐수를 통해 바닷물이나 하천으로 유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물고기와 농작물이 수은에 노출되고 이는 먹이 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간에게 다시 전달된다.
수은이 먹이 사슬을 통해 전달되는 이유는 수은이 생체 내에서 쉽게 분해되거나 제거되지 않고 축적되기 때문이다.
수은은 자연적으로 토양이나 해수환경에 함유돼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수은에 오염된 공기·물·토양 그리고 여기서 자란 농작물이나 수은이 함유된 제품이나 식품을 통해 수은에 노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낮은 농도의 수은에 오랜 기간 노출돼 만성적 건강피해를 입을 수 있다.
수은의 형태와 건강 피해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이다. 액체 상태의 수은은 체온계와 형광등, 전기 스위치 등에 사용된다. 수은은 피부와 소화기관으로는 잘 흡수되지 않지만 오랜 기간 동안 체내에 쌓여 흥분과 불안 등의 정신적 이상현상을 유발한다.
염소, 황 등의 화학물질과 결합해 가루 형태로 방부제나 불법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무기수은은 주로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 독성은 무기수은과 유기수은 모두 유발할 수 있는데, 유기수은이란 유기성분인 탄소와 수은이 결합한 형태이다. 유기수은은 생물체를 통해 전해질 수 있고 어패류에 상당한 양이 존재한다.
미나마타 병도 유기수은의 한 종류인 메틸수은이 원인이었다. 임신부가 유기수은에 노출되면 태아도 수은중독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패류 섭취는 몸에 해로운가?
일반인이 수은에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로는 어패류 섭취이다. 먹이 사슬의 상위에 위치한 고등어, 참치 등 등푸른 생선에 상대적으로 많은 수은이 들어 있고, 특히 고래, 상어 등에는 기준치의 수십 배에 이르는 많은 양의 수은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내 수은 검출량을 국가별로 비교했을 때,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의 몸 속 수은 농도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어패류 섭취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년 전, 미국의 한 권위 있는 소비자 잡지는 임신부들에게 모든 종류의 참치를 먹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편 등푸른 생선의 섭취는 몸 속 수은 농도를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 대표적으로 DHA(도코사헥사엔산)·ALA(알파-리놀렌산)·EPA(에이코사펜타엔산) 등의 오메가 3 지방산도 다량 들어있다.
오메가 3 지방산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DHA는 뇌와 눈, 신경의 정상적 발달을 돕는다. 따라서 수은 때문에 등푸른 생선 섭취를 아예 피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양을 먹는 게 관건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신부·가임기 여성·수유부·유아 등의 경우 상어·황새치·왕고등어·옥돔 등 메탈수은 함량이 높은 어종은 일주일에 7온스(196g)이하, 그 외 어종은 12온스(336g)이하, 참치캔은 1개 이하로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영국의 식품기준청(FSA)은 임신부와 가임기 여성들은 일주일에 중간크기의 참치캔 2개 이하, 한 접시 이하의 참치 스테이크를 안전한 섭취량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신부·가임기 여성·수유모들은 상어·황새치·참치 등을 일주일에 100g 이상 먹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론
어패류를 통한 수은 노출 사례에서 보듯, 어떤 식품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피해를 주는 성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체 피해는 결국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산업활동을 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환경은 식물·동물·해산물을 통해 다시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다.
우리는 일본 미나마타 병 사건에서 이를 깨달았지만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건강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비록 미나마타 병과 같은 극단적인 수은 피해는 드물겠지만, 낮은 농도에 의한 만성적인 노출이 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규모는 오히려 더 클 수 있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오염이 지속된다면, 미나마타 병과 같은 극단적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환경이 건강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는 말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