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사수필가협회 지음/도서출판 재남 펴냄/1만 2000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의 말이다.
삶이 중년을 넘어 노년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씩 생명력을 잃게 된다.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옷가지는 해지고, 마음의 양식이 된 책들은 누렇게 뜬 모습으로 눈밖으로 나다가 결국 고서점행이거나 폐지로 둔갑한다. 아껴서 간직하던 갖가지 애장품들과도 별리의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게다가 몸도 부실해져 시나브로 몸 속 이곳 저곳엔 이미 인공의 흔적이 잠입해 있다. 버리고 갈 것들만 남게 됐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한국의사수필가협회가 여덟번째 공동수필집 <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를 펴냈다.
이 책에서 44명의 의사수필가들은 삶과 진료현장의 애환과 일상에서 노정된 감흥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특히 이번 수필집에는 지난 5월 유명을 달리한 고 임만빈 계명의대 교수(한국의사수필가협회 제3대 회장)를 추모하는 글과 유작 3편이 실려 있다. '나는 엉덩이를 좋아한다'·'병실꽃밭'·'모티' 등 세 작품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고인의 유려한 글 기운에 젖어들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의사수필가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입상작 8편도 수록돼 있다.
전경홍 의사수필가협회장은 "이번 작품집에는 환자진료에 책임감을 갖고 그들의 신음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배어있다"며 "환자들의 아픈 마음까지 헤아리며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현장의 갖가지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감동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거짓말(이효석)/'최후의 심판' 벽화와 예술가의 장인정신(이병훈)/보답(황건)/쓰레기같다고?(이동민)/호랑이와 곶감(박관석)/사랑둥지 사람들(전경홍)/목숨과 바꾼 조선사랑(맹광호)/걸맞은 자리(유인철)/아스클레피오스의 운명과 메르스사태(신종찬)/욕지도의 보름달(최시호)/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김인호) ▲인연의 그물-M과W(김종길)/가을엔 친구가(윤주홍)/얼굴이식(박대환)/초시계(여운갑)/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손들(김금미)/호작질(이무일)/무더 구다리의 두 여인(이종규)/아직은 쓸 만한 김 선배님(오인동)/지진의 추억(김석권)/문제의 이모님(안혜선)/인연의 그물(조광현) ▲밤의 한가운데서-손자의 얼굴(강혜민)/세상을 변화시키는 1초(황치일)/대물림(임선영)/억새의 미소(이방헌)/희망 판단자(김예은)/뉴욕타임스퀘어광장(정준기)/어느 환자의 마지막 소원(김화숙)/어머니의 꽃다발(정경헌)/인생은 외줄타기(김애양)/불끄면 500원(권경자)/밤의 한가운데서(조우신) ▲내면의 빛-통영 앞바다에서(이정희)/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유(남호탁)/뭐이 중헌디(이희)/원격을 소묘하다(유형준)/침묵에 대한 기억(정찬경)/진짜 대화(정명희)/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박언휘)/부부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원락)/내게 주는 상장(이석우)/여느날(윤태욱)/내면의 빛(신길자) 등이 실려 있다.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입상작으로는 ▲대상-분만실, 탄생 그리고 재회(이지선) ▲금상-고통의 병태생리학(김양우) ▲은상-고시원은 사랑입니다(서선미)/그림 한 점에 담긴 철학(김보민) ▲동상-능소화의 꽃말(정연주)/스마일로드, 그 한 걸음(최태양)/기내의 의학도 혹은 벙어리(임현아)/너구리(박현진) 등 여덟편이 실려 있다(☎ 070-8865-5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