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그란데 폴리도 스페인 라몬이카할대학 교수(종양의학과)
우리나라 전체 암발생률 1위를 기록 중인 다빈도암 '갑상선암' 중 '수질암'은 갑상선 유두암과 달리 한 해 국내 100명 정도만 발병하는 희소암이다. 갑상선 소포곁 C세포에서 발병해 다른 갑상선암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진단이 어렵다.
유병률이 낮고 진단이 어렵다보니 갑상선 수질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는 물론, 의료진의 인지도도 낮다.
이런 이유로 수질암은 진단 때 이미 환자의 절반이 림프절 전이를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격전이되면 수질암의 5년 생존율은 26%까지 떨어진다.
수질암은 분화암과 달리 방사성 요오드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수술이나 표적항암제 이외의 다른 치료법이 없다.
세계적 석학인 엔리케 그란데 풀리도 라몬이카할대학 교수를 15일 만나 수질암의 특성과 예후, 카프렐사를 포함한 치료 전략 대해 얘기했다.
<일문일답>
한국의 경우 갑상선 수질암 유병률이 0.4%라고 들었다. 갑상선 수질암과 같은 희소한 암을 전문분야로 선택한 계기는?
갑상선 수질암은 다른 암보다 발병 빈도가 낮다. 그렇다보니 관련 연구가 많지 않다. 연구와 치료가 쉽지않은 갑상선 수질암과 같은 희소질환은 다른 질환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환자에게 주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내가 희소질환인 갑상선 수질암의 연구와 치료에 도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갑상선 수질암과 같은 희소질환은 대중의 관심이 적다보니 환자가 국가나 사회로부터 받아야할 적정 지원을 받지못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유럽이나 스페인은 어떤가?
스페인은 한국과 공통점이 많다. 스페인도 약물과 임상시험, 신약의 급여 부분에 있어서 환자의 접근이 쉽지 않다. 질환이 흔치 않다보니 전문가 숫자도 적다. 다른 암의 경우 종양내과와 내분비내과, 외과 전문의가 함께 환자를 보는 다학제적 접근이 쉽지만 갑상선 수질암과 같이 발병이 적은 질환은 상대적으로 다학제적 접근이 충분하지 않다.
갑상선 수질암이란?
갑상선 수질암은 전체 갑상선암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발병률이 낮다. 한국은 이보다 더 적은 0.4% 수준으로 알고 있다. 매년 1백명 정도가 한국에서 갑상선 수질암으로 진단받는다. 갑상선 수질암은 갑상선을 둘러싸고 있는 비여포 C세포에서 발병한다. 비여포 C세포에는 뼈를 생성하거나 항상성에 관여하는 내분비 호르몬 칼시토닌이 분비된다. 칼시토닌은 골대사의 센서같은 작용을 한다.
현재 항암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RET'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 갑상선 수질암 발병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력에 영향을 받고 일부 산발성 갑상선암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진단이 어려운 갑상선 수질암의 진단율을 높이려면?
갑상선 수질암 치료의 핵심은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다. 보통 환자가 목 쪽에서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증상이 느껴져 오는데 이때는 늦다.
갑상선 수질암은 희소질환이기 때문에 환자가 수질암이 맞는지 계속해서 의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조기진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의료진의 수질암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병리적으로 확립된 지식을 활용해 분화 갑상선암인지 역형성암인지 수질암인지를 구분해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
갑상선 수질암 치료제 '카프렐사' 출시의 의미와 카프렐사 대표연구 'ZETA'에 대해 설명해달라.
갑상선 수질암은 항암화학요법이 별로 효과가 없다. 과거에는 독소루비신을 투여했지만 '무진행생존기간(PFS)'이 4개월에서 6개월을 채 넘지 못했다. 갑상선 수질암은 더는 항암화학치료 분야가 아니다.
카프렐사는 치료제가 없는 갑상선 수질암 치료의 공백을 메웠다는데 의미가 있다. 기존 항암치료와는 달리 표적 경구치료제이고 전문가로부터 좋은 관리를 받으면 우수한 내약성을 보인다.
ZETA 연구에 따르면 카프렐사 투여군의 PFS 중앙값이 30개월 정도로 길었다. 이미 전이된 환자군의 종양 크기도 45%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크기가 줄면 통증이나 인접 장기에 대한 압박 등 다양한 증상이 개선돼 삶의 질이 좋아진다.
카프렐사의 한계는?
카프렐사는 매우 우수한 제제지만 모든 치료제가 그렇듯 한계도 있다. 일단 어떤 환자가 사용하기 적절한지 선별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없다. 설사나 발진, 고혈압 등의 이상반응을 예방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카프렐사가 수질암을 완치하는 제제가 아니므로 수질암 완치를 위해 연구를 계속 해야 한다.
수질암의 완치를 위해 다른 시도는?
카프렐사와 기전은 유사하지만 타깃인 타이로신 키나아제 수용체가 다른 '카보잔티닙'이 있다. 유럽은 카보잔티닙을 이미 승인했지만 비싸다보니 많은 나라가 아직 급여승인을 하지 않았다. 1차에서 카프렐사를 쓰다 내성이 생겨 카보잔티닙을 또 다른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은 늘어날 것이다.
카프렐사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갑상선암 치료제로 전환된 특이한 이력이 있다.
타깃 질환에 효과가 없었지만 다른 질환에서는 효과가 있는 경우가 항암제 분야에서는 흔히 있다. 카프렐사 기전과 수질암이 발병하는 기전 자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갑상선 수질암 치료제로 전환하라 수 있었다.
카프렐사는 내피세포의 성장인자 EGFR을 타깃으로 하고 항혈관형성작용 기능이 있다. 폐암은 EGFR이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항혈관형성작용은 폐암 치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갑상선 수질암 치료에서는 두 작용기전이 필요하다. 물론 항혈관형성제제로 베바시주맙이 승인됐지만 화학요법과 병용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무진행생존기간이나 전체 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페인 임상현장에서 카프렐사의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하나?
TKI(타이로신 키나아제 억제제) 제제는 10년 이상 신장암 분야의 표준 치료였다. 그만큼 이상반응을 관리한 경험이 축적돼 있다. 고혈압이든, 백혈구 감소증이든, 이상반응에 대해 환자에게 사전에 교육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 이상반응에 대한 교육 덕에 이상반응이 나타나도 환자의 걱정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상반응의 중증 정도나 발생빈도도 줄일 수 있어 환자의 삶을 개선했다.
희소질환인 갑상선 수질암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내 의료진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치료 자체 뿐 아니라 치료 외적인 부분에서도 난제와 부딪치며 환자를 볼 거라 생각한다. 당장 희소질환 치료제 예산 배정을 위해 경영진이나 정부를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희소질환 치료를 위해 애쓰는 분께 감사드린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갑상선 수질암 치료에서 다학제적인 접근 방법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드린다. 내분비와 종양, 방사선, 병리, 외과 전문의가 환자를 중심에 놓고 다학제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모든 암은 물론 갑상선 수질암 치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