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진료 현장에서 간혹 우리는 특정 약제 혹은 특정 시술을 이용해 치료할 때 해당 약제나 시술에 의한 부작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 혼란의 가장 큰 이유는 약제나 시술의 시행여부에 대한 최종선택을 의사가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는 그러한 선택에 있어서 아직까지 공식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체계화 된 내용이 없고 실제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 대부분의 경우에 그 선택을 의사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의사에게 의지하는 환자 및 보호자에게 객관적으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얘기해주고 합병증이 뭐가 올 수 있으며 산술적인 수치를 제시해 준다고 해도 환자나 보호자가 이성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환자와 의사간에 진정한 소통이 있을 수 없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공유된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은 어느 한 쪽이 감정적인 면이 강하면 얼핏 서로의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필자도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젊은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경험이 적기 때문에 공유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해도 많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병이 발견되고 혹은 어떤 치료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이 진단됐다는 그 충격 때문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그 치료를 하면 어떤 합병증이 생기는지에 대해 무게를 덜 두게 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사에게 치료에 대한 당위를 떠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료환경 상황은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흄이 그의 저서인 <도덕 원리 연구>에서 제시한 흄의 법칙에 정확히 배치된다. 하지만 흄의 법칙을 우리가 의료현장에 원용하면 우리 스스로 떠안고 있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흄의 법칙이란 어떤 존재진술 즉, '무엇은 무엇이다, 혹은 무엇은 존재한다'라는 사실이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진술에 연역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어떤 병이 진단됐을 때 그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조건 어떤 치료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참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또 어떤 치료를 시행하면 어떤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치료를 시행하는 여부를 결정하는 당위와는 직접적으로 연역되지 않고 다른 요인들에 의해 당위는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법칙 안에서 비로소 그나마 무거운 그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존재진술, 즉 임상적인 현재 환자 상태에서 어떤 치료를 결정하는 당위를 설명할 때 우리 의사는 당위를 결정하는 몫이 주가 아니고 여러 가지의 당위에 대한 많은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최종 당위를 환자 혹은 보호자와 공유된 결정을 할 수 있음을 바로 이 법칙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혹은 보호자 분들이 간혹 단순히 양적인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상황에 실망할 수 있기 때문에 양적인 과학적인 근거와 의사 본인의 짧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질적인 의학적 근거를 같이 제시함으로써 최종적인 결정을 같이 할 수 있게 된다면 비로소 이성적인 공유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흄은 존재진술과 당위진술을 구분해서 설명할 때 '이성'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별개 몫이며 오히려 '정념'이 중요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흄의 법칙을 통해 그 법칙을 공유된 의사결정 과정에 원용하면서 우리 안에 남아있던 혼란스러움이 어느 정도는 정리됐다 하더라고 우리에겐 여전히 남아 있는 중요한 명제가 있다.
존재진술, 즉 '무엇은 어떤 병을 일으킨다' 혹은 '어떤 치료는 어떤 합병증을 유발한다' 등의 우리가 알고 있는 또한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사실에 대해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항상 추가 연구가 나오면 이런 사실이 바뀔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음이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도 최신의 존재진술, 즉 최근에 밝혀진 논문의 결과들을 주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문해 볼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