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
이번엔 굳이 따지면 의료사고 판례가 아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지자면 의료사고 판례다. 왜냐하면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나이와 관련된 결정적인 대법원 판례의 태도 변경이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거나 어린아이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
이 때 피해자의 일실수입, 그러니까 소득 및 가동연한에 관하여 어떤 임금을 적용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를 정리하는 것은 손해배상액수를 정하는 데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만 60세가 되는 때까지',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했다(물론 직업이 있고 구체적인 정년이 있는 경우는 당연히 그 기준에 따라야한다).
이런 기준은 1989년 이래 일관된 대법원의 법리였다(1989. 12. 26. 선고 88다카16867 전원합의체 판결). 그 전까지는 만 55세였는데 그 때 만 60세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 65세로 바뀌었다. 배상액수가 5년치가 늘어나게 된 셈이다.
[ 사실 ]
4세 5개월 된 남자아이가 있었다. 2015년 8월 부모, 누나와 함께 수영장에 가게 됐다. 잠시 주의를 소홀히 한 사이에 수영장을 혼자서 돌아다니다 풀장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부모와 가족들은 수영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1심 및 2심 ]
1심 및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고수했다.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 21개월의 군복무를 마친 때부터 만 60세가 되는 때까지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했다. 다만 위자료는 1, 2심 간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 3심 ]
대법원은 지금까지 태도와는 달리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29일 공개변론까지 열고 전문가 등 각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런 다음 최종 판결을 선고했다.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아 온 견해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바꿀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9명의 대법관이 대법원 판례를 바꾸자는 쪽에 섰다. 나머지 두 사람은 63세로 하자고 했다.
또 한 대법관은 만 60세 이상이라고 포괄적으로 선언하는 게 앞으로 탄력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수의견의 근거는 이렇다. 첫째, 경험칙상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늘리는 게 맞다. 65세면 충분히 건강하게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되었다는 점이 또 다른 근거가 됐다.
국민 평균 여명이 30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는 점, 국민총생산도 그전 판례때보다 4배 이상 커졌다는 점, 법정 정년도 이미 늘었다는 점, 국민연금법상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점차 연장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결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은 이제 60세가 아니라 65세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경험적 사실들의 변화를 대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간 의 논란을 전원합의체가 확고하게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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