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 구매대행 사이트 통해 전문약 30품목 처방전 없이 구입
녹내장 치료제가 속눈썹 발모제로...자의적 전문약 사용 부작용 속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까지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해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적응증과 무관하게 약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면서 부작용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해외 불법사이트 및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15종의 전문의약품 30개 주문한 결과, 전 제품 모두 처방전 없이 구매가 가능했다고 6일 밝혔다. 이들 의약품은 세관에서 수입신고나 처방전 제출 등의 절차없이 모두 통관됐다.
소비자원이 직구에 성공한 전문약에는 만성 C형간염 치료제인 소포스부비르, 포진치료제인 아시클로버, 여드름 치료제인 이소트레티노인, 탈모증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국내외 가격차가 큰 품목으로 소비자들이 가격부담을 이유로 해외직구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판매국 기준으로 일반의약품과 식이보충제로 분류되지만,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구분돼 의사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는 피라세탐, 멜라토닌, 오르리스타트, 오메프라졸, 아다팔렌 등도 해외직구로 구입이 가능했다.
이들 품목은 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약들은 해외직구로 국내에 들어와 머리 좋아지는 약, 속눈썹 증모제 등으로 둔갑돼 사용되고 있었다.
기면증 치료제인 모다피닐과 인지장애 치료제인 피라세팀은 각각 머리가 좋아지는 약, 녹내장 치료제인 비마토프로스트는 속눈썹 증모제, 갱년기증상 경감제인 에스트라비올은 성전환자를 위한 여성호르몬으로 국내에 반입돼 사용되고 있었다.
국내 무허가 의약품이 해외직구로 들어온 사례도 있다.
리오티로닌 레보트록신, 미소프로스톨 미페프리스톤, 스타노졸롤 등은 국내에서는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의약품이나 각각 갑상선 기능저하증 치료와 임신중절, 근력강화용 스테로이드제로 사용됐다.
소비자원이 구입한 전문의약품 30개 가운데 19개는 국제우편물, 8개 제품은 특송물품, 또 일부는 국내우편물 형태로 소비자에 전달됐는데, 통관에는 걸리지 않았다.
조사대상 30개 중 10개(33.3%) 제품은 통갈이와 허위 처방전 동봉, 통관 금지 성분명 누락, 제품가격 허위기재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세관의 확인절차를 회피한 것으로 파악됐고, 일부는 소액·소량 자가사용 목적 의약품으로 표시돼 별다른 문제없이 국내에 들어왔다.
현행 관세법은 US 150달러 이하, 총 6병 또는 용법상 3개월 복용량의 이른바 '소액·소량'의약품을 자가사용 목적으로 수입하는 경우 수입신고 및 관세를 면제하고 있어, 판매자가 이를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원은 이들 약 대부분이 불법 의약품이 가능성도 높아보인다고 봤다.
실제 소비자원이 30개 제품의 용기·포장 표시사항과 첨부문서를 확인한 결과, 10개 제품(33.3%)은 첨부문서가 동봉되지 않았고, 6개 제품(20.0%)은 원 포장과 상이했으며, 14개 제품(46.7%)은 식별표시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제품은 판매국·발송국·제조국 등이 서로 상이해 유통경로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소비자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A씨는 해외직구로 탈모약(피나스테리드)을 구매해 복용 한 후 탈모가 더 심해지고 만성피로와 여드름이 생겨 기존에 처방받아 복용하던 약품로 갈아탔고, B씨는 해외직구로 구매한 녹내장치료제 점안액(비마토프로스트)을 속눈썹 증모 목적으로 사용 후 눈 주위 색소침착과 안구 건조·가려움증 등의 부작용을 겪었다.
C씨는 해외 여성단체를 통해 구매한 임신중절약(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복용 후 출혈 및 빈혈증상을 겪어 병원 방문 결과, 불완전유산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다.
소비자원은 금번 조사결과에 나타난 문제점 개선을 위해 관세청에 ▲전문의약품 통관 관련 자가사용 인정기준 세분화 등의 통관 규정 개선 ▲특송·국제우편 등 의약품 통관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를 요구하기로 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에는 ▲전문의약품 불법 판매 사이트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차단 ▲해외직구 전문의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에 대한 소비자 교육 및 홍보 강화를 요청할 예정이다.
소비자원은 또 소비자들에 "정상적인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해외직구 전문의약품의 구입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