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필리핀 의료봉사 30년…세상의 빛 전해요

네팔·필리핀 의료봉사 30년…세상의 빛 전해요

  • 이민정 사보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7.1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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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
"봉사활동 지역 선정 등 설계사 역할"

김정선 포토그래퍼ⓒ의협신문
김정선 포토그래퍼ⓒ의협신문

네팔 지진이나 필리핀 쓰나미 재해처럼 긴급한 상황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네팔에 세운 병원이 현지에서 손꼽히는 의료 서비스 병원으로 자리잡게 한 로즈클럽인터내셔널. 

30여 년 동안 네팔·필리핀·중국·몽골·우즈베키스탄·에티오피아 등까지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인천 부평·박가정의학과의원)에게 지속가능한 의료봉사와 보건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로즈클럽인터내셔널은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널리 알려진 단체가 아니라서 이름이 낯선 분들도 많을 겁니다. 현재는 150여 명의 의사와 일반후원자가 회원으로 가입해 네팔과 필리핀 등 해외 빈곤 국가에서 보건의료봉사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은 박가정의학과의원장이라는 타이틀보다 네팔과 필리핀 의료봉사로 더 유명한 의사다. 그동안 작은 힘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본 사람이다. 2003년 혼자 떠났던 필리핀 의료봉사에서 의사 한 명이 할 수 있는 봉사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할 만한 NGO 단체를 찾은 곳이 바로 로즈클럽인터내셔널이다. 

로즈클럽인터내셔널은 1965년 미국 출신 로비슨 선교사와 유재춘 목사·박종철 원장(서울 종로·박종철신경정신과의원)이 의기투합해 뇌전증 환자 치료 모임으로 출발했다. 흔히 간질이라고 부르는 뇌전증 환자는 약물 치료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어렵지 않은데 당시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치료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로빈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치료약을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뇌전증 환자 전문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로즈클럽이라는 이름 덕분에 국내에선 장미회로 잘 알려졌는데 봉사 사업이 커지면서 1974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1985년부터 해외 지원사업을 시작해 중국 연변·몽골·우즈베키스탄 등에 뇌전증 치료 의약품을 지원했다. 2014년에는 국내 사업과 별도로 해외사업부를 사단법인 로즈클럽인터내셔널로 독립시켰다. 

특히 네팔과 필리핀은 로즈클럽인터내셔널이 관심을 두고 30여 년 동안 의료와 교육봉사 활동을 이어왔다. 1990년 네팔 들라카 마을에 가우리상카병원을 설립하고 간호사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네팔 소망아카데미 학교와 한-네팔친선병원 티미병원과 필리핀 아미사진료소 등이 그동안 이룬 성과다.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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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봉사 DNA 깨우는 가슴 아픈 현장

"우리가 TV 매체 등에서 본 것보다 네팔이나 필리핀의 환경은 더 열악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암이나 희귀질환이 아니라 결핵이나 장염 같은 전염병으로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현장을 보면 의사로서 누구나 사명감을 느끼게 되죠."

봉사 활동을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박철성 사무총장은 우리 중 누구에게나 봉사 활동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기회가 없어서 숨어있을 뿐 한번 눈을 뜨면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박철성 사무총장은 2010년부터 4년간 한-네팔친선병원 의료팀장으로 일하면서 네팔의 안타까운 상황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다. 네팔은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으로 병원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의사의 실력이 아니라 병원의 기초적인 설비·장비·의료 약품 등이 없어 처치나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때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 주사약만 제대로 제공해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의료봉사를 하면서 필리핀의 작은 섬에 갔는데 주민 중에는 의사를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이 많았어요. 필리핀 원주민 중에는 아직도 주술 치료나 기도만으로 병을 낫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약 먹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그림으로 설명을 대신한 적도 있었습니다." 

박철성 사무총장은 2003년부터 필리핀 민도르 섬의 망향족, 피나투보 아이따족을 비롯해 바세코의 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봉사를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한계를 절감했다. 난생처음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사람에게 한 번 방문하는 의료봉사는 일회성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회성 진료가 되지 않으려면 현지에서 지속적인 치료와 돌봄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병원을 지어주는 것도 좋지만 그 병원이 한국의 자원봉사자가 떠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자립성을 키워야만 한다. 그래서 중요한 활동이 의료진 대상의 교육과 역량 강화 활동이다.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은 봉사활동의 설계사 같은 역할이다. 의료봉사가 필요한 지역을 선정하는 것은 물론 봉사단과 함께 그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질병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고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도록 보건 체계를 강화할 방법을 찾는다. 현지 의사들에게 초음파나 내시경 진단 방법을 전수하는 것부터 한국으로 교육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까지 실천 방법은 다양하다.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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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의료봉사 혜택으로 얻은 새 삶

"봉사는 참 신기한 힘이 있어요. 혼자 작은 힘으로 시작한 일이 돌아보면 점점 들불처럼 번지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옮아가고 또 다른 사람이 따라 하면서 점점 커져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되는 원리죠. 세상을 조금 더 밝게 하는 빛이라고 할까요? 저 역시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의료봉사를 실천하고 있지만 박철성 사무총장 역시 의료봉사 혜택으로 다시 태어나다시피 했다. 소아마비로 다리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없고 기피 대상에 가까워 트라우마를 얻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여수 애양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스탠리 토플 선교사를 알게 됐다. 당시 애양원으로 불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병원이다. 토플 선교사는 원장으로 일하면서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재활 치료를 하면서 소아마비 환자도 수술해줬다. 

박철성 사무총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토플 선생이 다리를 수술해주면서 새 삶을 얻었다. 그때의 충격과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의사라는 직업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토플 선생에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존경심도 생겼다. 그때부터 의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 또 어린 나이였지만 가난한 나라에 찾아와 의료봉사를 통해 사랑을 베푸는 토플 선생과 같은 길을 가고 싶다는 소망도 품게 됐다. 

"2018년 스탠리 토플 선생이 석천나눔상 수상자로 선정돼 우리나라에 방문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토플 선생을 꼭 만나고 싶어 어렵게 그 자리에 찾아갔어요. 그때 토플 선생을 비롯 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토플 선생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케냐에서 의료봉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가족 중 따님 한 분은 북한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고 다시 한번 존경심을 품게 됐습니다."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소식에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될지 부끄러움이 앞섰다고 말하는 박철성 사무총장은 혼자만의 영광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 일해온 NGO 동료, 가족들과 함께 수상의 영광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의료봉사는 혼자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협력을 이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멈춰서긴 했지만 세계 3대 빈민촌인 필리핀 바세코 지역에 메디컬센터를 지어주는 사업과 네팔·인도 접경에 위치한 티까풀 지역 보건의료 역량 강화 사업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봉쇄가 풀리면 곧바로 다시 봉사 활동을 떠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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