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자체 "시장님 지시사항" 이유로 직원 현황표까지 돌리며 설문 강요
醫 "행정기관 주도의 조직적 여론조작...왜곡된 설문결과 공신력 잃어" 비판
국민권익위원회가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자체가 시 공무원과 가족·지인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일반 설문자는 알 수 없는 '현재 응답자의 90% 이상이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중간 결과까지 공유하며, "설문조사와 댓글로 의견을 남겨야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사실상 '찬성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의사 총파업을 앞둔 지난 12일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한 사회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정책 수립을 위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국민 설문조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해당 설문 결과는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찬성 여론이 높을 경우 정책 추진의 당위성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11일 시작된 온라인 설문조사에는 18일 21시 현재까지 모두 1만 8992명이 참여했다. 일반 국민 누구나 설문에 참여할 수 있으나, 설문조사 결과는 권익위 발표 전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에서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일자별 설문조사결과를 공유하며, 조직적으로 설문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OO시는 최근 '(시장님 지시사항) 권익위 설문조사 참여 협조요청'이라는 제하의 공문을 통해, 시 공무원들의 설문조사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해당 조사는 '국무회의' 등에 보고되고 언론에 제공되며 법제 및 정책 수립시 국민 여론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는 설명과 함께다.
공문에는 ▲권익위 보도자료 ▲권익위 설문조사 대응방안 ▲참여방법 ▲직원 현원표 등을 함께 첨부해, 사실상 개별 직원들의 참여 여부까지 관리하고 있음을 알렸다.
해당 시청은 내부 인트라넷 공지 내용은 더욱 노골적이다. 전날 저녁 기준 설문조사 중간결과까지 공유하며 "여론을 바꾸자"고 적었다.
'시청 기획실' 발신의 해당 게시물은 "현재 90% 이상이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 입장이고, 의사협회 쪽에서 조직적으로 참여해 반대여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설문조사와 댓글로 의견을 남겨야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니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달자는 얘기다.
게시자는 "시장님께서도 직원과 가족, 시민들이 꼭 참여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공문이 가게 되면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가족, 친지들에게도 널리 알려 설문조사에 적극 응하도록 부탁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한명이 5번까지 참여 가능하다"는 또 다른 '팁'도 담겼다.
의료계는 공분하고 있다. 공신력을 갖춰야 할 공기관 설문조사결과를, 중립성을 가져야 할 공무원이 앞장 서 조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의사 A씨는 "행정기관 주도의 조직적 여론 조작"이라고 비판했고, 의사 B씨는 "국정원 댓글사건에 못지 않은 황당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의사 C씨는 "우리나라에 만연해있는 떼법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이것이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일부라고는하나 조직적 여론조작 움직임이 포착된 만큼, 권익위가 진행 중인 설문조사는 이미 공신력을 잃었다"며 "정부가 이를 빌미로 의대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을 밀어붙인다면, 의료계는 물론 국민 누구의 동의도 얻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