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첨병 공보의 380∼400명 미배출, 취약지 의료공백 현실로
'귀해진 인턴' 대형병원 쏠림 불 보듯...지방병원-필수·응급의료 '구멍'
올해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이 지난 10일 '응시 대상자 86% 결시'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긴 채 일단 마무리됐다.
올 의사국시 실기시험은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인력 증원 정책 추진과 그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휴진, 의대생 국시거부로 이어진 극한의 상황 끝에 전체 응시 대상자 3172명 중 무려 2736명이 불참한 채 치러졌다.
내년 1월 치러질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현직 의대 4학년생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응시 원서를 접수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정상적인 국시 응시의사를 표시한 상황.
그러나 의사국시 실기와 필기 모두에 합격해야만 당해 차수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어, 최악의 경우 내년 2700명이 넘는 신규의사 미배출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의사국시 파행이 현실화되면서 당장 내년 의료현장에서 벌어질 의료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 보건복지부 내부에서 "고민이 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보의 미배출...의료 취약지·지방병원 응급실 직격탄
정부는 금번 의사국시 파행으로 380∼400명에 이르는 공보의가 예정과 달리 현장에 투입되지 못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공보의 재배치와 대체인력 활용을 통해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지만, 공보의 규모가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 전체 공보의 규모는 최근 10년간 3300명에서 1800명 수준으로 줄었다. 그에 맞춰 공보의 배치 기준 또한 해마다 달라져 추가 조정의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판단이다.
공보의가 부족해지면 섬지역 등 격오지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의료인력이 배치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공보의들이 취약지를 돌며 '순환 근무'하게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상주 인력이 없다면 응급상황 등에 대한 대처가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
공보의를 지원받아 응급의료를 제공해오던 지방병원에서는, 최악의 경우 응급실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로부터 공보의를 지원받아 공공의료 역할을 수행해 온 군 지역 민간병원은 대략 90곳 정도다.
코로나19 대응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코로나19 대응 초기 다수 공보의들이 현장에 투입됐고, 현재에도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코로나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다수 공보의가 활동 중이다.
기존 인력 업무부담 가중...의료서비스 질 저하·환자 불편 이어져
2000명이 넘는 인턴이 내년 의료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단순히 병원 운영상의 차질을 넘어 기존 인력의 업무부담 증가와 그로 인한 의료 서비스 질 저하 등이 우려된다. 비인기과 기피현상도 확연해져 지방병원 필수·응급분야에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게 병원계의 전망이다.
일단 인턴이 들어오지 않으면 각 병원 기본 진료 업무에 공백이 불가피하다. 기존 전공의들의 인력의 업무부담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인턴을 마치는 내년 레지던트 1년차들은 새로 부여받을 레지던트 업무에 기존 인턴 업무까지 모두 수행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전공의 특별법에 따라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된 만큼, 팰로우나 교수들도 그에 따른 역할 분담을 요구받게 된다. 대체인력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존 인력들의 업무량 증가는 당연한 수순이다.
병원계 관계자는 "병원은 각 조직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환자에게 필요한 최상의 진료를 제공해 나가는 시스템으로, 톱니바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빠지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병원 인력이 부족해지면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술 일정이 미뤄지는 등 환자 입장에서도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귀해진 인턴' 수도권 쏠림 불 보 듯...지방·필수진료과 '곡소리'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지방 병원 필수진료과 기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의료계는 당장 내년 새로 들어올 인턴들이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 인기과에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대로 기존에도 인턴 미달사태를 겪었던 지방의 중소병원들에서는 "인턴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전공과를 택하는 내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바이탈과로 통칭되는 필수·응급분야의 공백, 이른바 의료대란의 시작이다.
병원계 관계자는 "흉부외과·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국민건강에 필수적이나 수련이 고되고 위험부담이 높아 현재에도 전공의 기근을 겪고 있다"며 "금번 인턴 공백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필수·응급 분야 몰락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기존 전공의 인력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병원계의 전언이다.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기존 전공의 인력이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지방 중소병원 전공의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수련병원을 갈아타기 위해 이탈할 가능성도 높게 본다. 어찌되었든 수도권 대형병원 인기과로의 쏠림이 공고해진다는 의미다.
신규인력이 거의 2배가 되는 내후년도 문제다. 이들은 전례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 전공의 모집전형을 뚫어야 한다. 각 병원 전공의 숫자가 정해져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 지원자 절반 가량은 수련기회를 아예 얻지 못한다.
병원계 관계자는 "정부는 대체인력 확보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2700명에 달하는 인력공백은 그런 임시방편으로 떼울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의료공백으로 인한 후유증이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라며 "이미 심각한 단계에 와 있는 의료 왜곡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가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