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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7 13:15 (토)
[기획취재]처음부터 잘못 도입된 건강보험

[기획취재]처음부터 잘못 도입된 건강보험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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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땅 잃는 의사들-건강보험 이대로는 안된다(1)

<글 싣는 순서>
1. 처음부터 잘못 도입된 건강보험
2. 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대안은?
3. 의협은 왜 '건강보험 틀'을 바꾸자고 하는가?
4.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 변화 필요
5. 건강보험 수가문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6. 새로운 건강보험체계의 모습은?
7. 기획을 마치며(좌담회)


첫 단추부터 잘못…표류하는 건강보험

1977년 도입된 의료보험(건강보험)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의료보험 통합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보험재정 파탄으로 인해 더 이상 저수가-저급여-저보험으로는 건강보험제도가 운영이 힘들게 됐으며, 따라서 이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야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의료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의료계는 사회보험방식의 단일보험 하에서는 제대로된 진료는 물론 의료의 왜곡만 초래할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건강보험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건강보험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틀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협의 주장은 기존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이 의료사회주의에 무게의 중심을 두다보니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임시방편적 문제해결밖에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의료서비스는 물론 질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데서 비롯됐다.

의협은 현행 건강보험을 대폭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간보험이 도입돼야 하고, 건강보험 관리체계의 문제를 새롭게 고민함과 동시에 보험자도 경쟁할 수 있는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수가결정 방식을 전면 개편하고 의료도 이제는 국가 기간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도 의협은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잘못된 의료정책의 근본 틀을 바꾸고 의료법과 약사법 등이 개정될 수 있도록 모든 정치력을 동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틀 개편을 위해 그동안 제기되었던 문제점을 정리하고, 현실적으로 개혁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건강보험 이대로는 안된다'를 주제로 7차례에 걸쳐 기획시리즈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준비없는 의보 상처투성이
 
1977년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이 도입된 배경을 알게되면 웃음부터 먼저 나온다. 한 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를 보고 발전계획을 세워야 하고 철저한 사전조사와 현실 적용 여부를 검토해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이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이 당시에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소위 '혁명정부'가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무리하게 의료보험법을 제정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많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경험해야 했다.
또한 북한체제와 비교해 사회보장이 뒤쳐지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혁명정부'는 장기적인 종합계획을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출발한 의료보험은 30여년이 다 되도록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상처투성이인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한국의학원에서 발행한 '국민건강보험의 평가와 발전방향'에 따르면 국민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00달러도 되지 않은 때에 어렵사리 시작된 의료보험은 그 후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와 계획 없이 시작된 의료보험은 그 동안 조금씩 개선 보완해 왔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하지 못한 채 갈수록 의료의 왜곡현상만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정부는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곤혹을 치렀고, 국민은 새로운 제도변화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며, 의료계로 하여금 진료권 회복 및 적정 수가를 주장 하면서 거리로 뛰쳐 나오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의약분업과 동시에 추진된 의료보험통합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보험재정파탄이란 장애 때문에 부딪혀 결과적으로 건강보험의 총체적인 모순을 드러내고 말았다.이 과정에서 정부는 대혼란이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보이지 못한 것은 물론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장관만 여러번 교체됐을 뿐 잘못된 정책 추진에 대한 솔직한 반성은 여전히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처음부터 잘못 도입된 의료보험을 깊이 있게 분석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 됐다.사회·경제적 수준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제도적으로 대폭적인 개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는 시점이다.

정치적 상황속 조급 시행

단 시간 내에 전국민의료보험이 실현된 것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유승흠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다 앞서 전국민의료보험을 시작한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짧은 기간에 의료보험을 전국민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세밀한 계획 하에 면밀한 검토가 부족해 사회적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이처럼 급격하게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끊임없이 문제점들이 부각되거나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또한 "그 때마다 부분적인 수정을 거듭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오고 있으나, 전면적으로 의료보험의 틀을 검토하는 기회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언급했다.

결국, 조급하게 시행된 의료보험제도로 인해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을 계기로 의료대란을 치르게 되었으며,의료계의 불만이 분출됨과 동시에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의료보험 문제가 폭발하게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의료분야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공성을 요구하는 사회보험체제와 민간의료체제의 충돌로 인해 그 갈등은 더욱 심화될 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수가 '감'으로 정했다?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고 난 다음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의료보험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그 중에서도 보험수가를 어느정도 수준에 맞추어야 할지가 가장 난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 당시 담당 공무원이었던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의 의료보험제도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보험수가는 자료에 의한 결정이 아닌 '감'으로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500명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할 당시 보험료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보험수가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추상적인 설정만 있었지 구체화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일본의 의료보험제도를 모방했던 만큼 수가도 일본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국내에서는 일본의 수가체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전무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결국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시술시간, 빈도, 난이도를 적용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 의료보험수가를 만들게 됐다"며 그 당시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77년 수가, 관행수가의 55% 수준에 불과
 
한달선 교수는 '의료보험의 의료제도적 기능'이라는 보고서에서 "의료보험 수가는 1977년 당시 관행수가의 55% 수준에서 출발해 거의 매년 인상·조정되었다"고 밝혔다.

현재 행위별수가제도가 어떠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보험에서는 이 지불방법이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정부도 인정할 만큼 비현실적 이었다.

한달선 교수는 "정부가 낮은 보험수가로 출발해 수가인상을 억제해온 이유는 처음부터 낮은 보험료율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서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낮은 보험수가는 보험급여비용과 보험료부담을 적게 유지하는 수단의 하나로 사용된 것으로 환자들에게는 보험료와 의료이용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 효과가 있었겠으나 의료계는 낮은 수가로 인한 수입감소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낮게 됐다.

저보험료 정책 일관 재정파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부는 의료보험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저보험료정책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험료 수입이 적다보니 수가도 적을 수밖에 없었고, 급여확대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이규식 교수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국가는 경제성장이나 전국민의료보험의 조기 실현을 위해 저보험료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항상 보험재정이 궁핍해 정부가 실질적으로 의료분야를 규제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주로 명분적인 법률 규제에 그쳤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까운 시기인 1999년 5월 이후 2000년 12월까지 1년 7개월 동안에도 정부는 지역보험료를 단 한차례도 올리지 않았다. 당시 총선이 있었고, 의료보험통합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인상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규식 교수는 "그 결과 규제 대상자로 하여금 제도에서 일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제도만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모순만 파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만약, 정부가 정치적 상황 등에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짧은 시간에 수가, 보험료, 급여를 적정한 수준으로 맞추어 주었다면 오늘과 같은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못 적용된 의료보험제도의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국가적 대혼란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국민, 정부, 의료계 모두가 불만이 있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총체적 문제 예견되었던 일

이규식 교수의 말을 빌면 현행 보험제도는 도입 초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형평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비효율적이다.
이 교수는 또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성장해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국제적인 경제환경이 변화했으며, 인구구조가 바뀌고, 의료기술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관리에서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1977년 의료보험 도입 당시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 수준이었고, 의료자원이 부족했으며, 보험관리에 대한 기술도 없었고, 인구구조도 인구증가율이 1.6% 이상에 이르고 있었다.의료시장에 대한 견해도 대부분의 학자들간에 시장실패가 지배하는 분야로 정부개입을 당연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취했던 방식은 요양기관지정제, 의료보험수가의 정부 고시제, 진료비에 대한 심사제를 기본 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1977년과 상황이 매우 다름에도 기존 '틀'이 초래시키는 문제점에 대해 한번도 반성하지 않고 지속해 나가려는 것은 정부의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오늘의 의료문제는 서비스 수준의 하항평준화로 인한 의료 외유, 응급의료의 미비, 외과계 의사의 확보난, 의료 공급자의 지나친 이윤추구적 행태 문제 등 국민의료의 성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떨어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여정부, 뒷짐질 때 아니다
 
현재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렇게 문제투성이에 놓여있는 건강보험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건강보험 거부' 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의 틀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바꾸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는 건강보험의 중·장기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건강보험발전위원회를 구성·운영 중에 있지만 얼만큼의 성과를 내놓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을 하기보다는 현 운영체제를 그대로 두되 사회주의적 접근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의료공급자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일부 학자들의 한쪽으로 치우친 논리만 참고한다면 지금 당장은 현 건강보험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영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의료기관의 운영주체는 대부분 민간자본으로 자유시장에 의한 경영에 익숙해 있고, 의료소비자인 국민들 역시 자유로운 이용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와 잘 조화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해도 민간 중심 시장에서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의료보험을 시작했으나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했다기보다는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 떠넘긴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정부가 건강보험의 틀을 바꾸기 위한 모습을 먼저 보여주기를 바랄뿐이다. 얼마전 복지부 이상석 연금보험국장이 의협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건강보험제도 개선의 비전 제시가 필요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를 단지 의견수렴의 관계자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인정하고 함께 간다면 건강보험의 총체적인 문제 해결은 더욱 앞당겨 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취재1팀>
김영숙기자 kimys@kma.org
이정환기자 leejh91@kma.org
김인혜기자 inhey@kma.org
이현식기자 hslee03@kma.org
이정환기자 leejh91@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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