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같은 진료기록, 다른 감정 의견

법률칼럼 같은 진료기록, 다른 감정 의견

  •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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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검사 이뤄졌다면 예후 차이" vs "의료진 조치 일반적"  
대법 "감정서 보완 명하거나 사실조회 등 강구해야" 파기환송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법원에서의 감정 결과에 따라 원·피고 당사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鑑定)이란 민사소송법상 법관의 지식과 경험을 보충하기 위해 학식·경험 있는 제3자의 의견을 청취함을 목적으로 하는 증거조사를 말한다. 

가령 아파트 누수 분쟁에서 물이 새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감정평가사에게 현장 감정을 의뢰한다든지, 의료 분쟁에서 환자의 사망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의사에게 진료기록 감정을 의뢰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법관으로서는 전문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소송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판결에 반영할 수 있어 선호하는 방법이지만, 당사자로서는 일단 만만치 않은 감정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래서 감정 결과가 신청인에게 유리하고 소송 전체의 규모로 볼 때 이익이 될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감정 비용을 아끼기 위해 조정 절차로 회부해서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하는 방안을 도출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같은 사안에 대해 전문가의 감정 의견이 상반되는 경우는 어떨까. 참고할 만한 최근 대법원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망인 A씨는 2015년 7월경 자다가 일어나던 중 실신해서 B병원을 찾았고, 불안정성협심증(Unstable Angina Pectoris) 진단을 받아 90% 가량의 협착이 확인된 좌회선동맥에 풍선 혈관 성형술을 받았다. 

A씨는 이후 상태가 호전돼 심부전 치료제인 네비레트정 등을 처방받아 나흘만에 퇴원했다. 혈액검사 결과 심근손상의 표지자인 심근효소수치(Troponin Ⅰ, 참고치 0∼0.04ng/ml)는 B병원 내원 당시 최고 0.74ng/ml로 측정됐다가 퇴원할 때 0.14ng/ml까지 감소했다. 

약 3주 후에 A씨는 또 실신 및 명치부위 답답함 증상으로 B병원을 찾았다. 이전보다 낮은 혈압이 측정되자, 병원 의료진은 네비레트정이 서맥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처방을 중단했다. 

A씨는 다시 3주 후쯤 실신 증상으로 B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당시 심근효소 수치가 0.09ng/ml로 참고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의료진은 A씨의 증상이 기립성저혈압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고 그대로 퇴원시켰다. 

A씨는 일주일 뒤 명치 부위 답답함을 호소하면서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같은 날 사망하고 말았다. 

유족들은 "풍선혈관확장술을 시행받고 퇴원한 후 한 달만에 실신, 가슴 답답함 등의 증상과 여러 이상 소견이 나타났음에도 단순히 역류성 식도염 및 기립성 저혈압에 대한 임상학적 판단만 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적인 심장 검사와 처치를 하지 않아 망인의 상태를 악화시켰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B병원 측에 장례비와 위자료 등을 청구했다.  

소송과정에서 망인이 재차 실신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 추가 검사 없이 퇴원시킨 조치의 적절성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분쟁조정원 소속 감정의와 대한의사협회 소속 감정의는 당시 B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증상을 기립성저혈압으로 진단한 것은 적절하다고 보면서도, 그 후속 조치 필요성에 대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전자는 "실신 증상이 시술 후에도 계속됐고, 심전도 이상, 심근효소 및 심부전 표지자 증가 소견이 있었으므로 기립성저혈압의 원인으로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관상동맥조영술, 심장초음파 검사 등 추가 조치가 필요했다"며 이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하다고 감정했다. 

반면 후자는 "응급실 방문 당시 추가 검사를 시행했다면 사인 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망인의 심전도에 변화가 없고, 혈액검사에서 심근효소의 변화도 없어 추가검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심부전 약물 치료만으로도 실신이 발생할 수 있어 약물을 조절하면서 경과를 관찰한 것은 일반적인 접근과정이었다는 의견이다. 

원심은 이를 토대로 B병원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하더라도 사망이라는 결과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해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렇듯 감정의견이 상반되는 경우 특정 의견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감정서의 보완을 명하거나 증인신문, 사실조회 등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의료진이 망인에게 추가적인 검사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주의의무위반으로 평가된다면 망인의 사망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추정되고, 고령의 불안정성협심증 환자들에게서 높은 확률로 급성심장사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인과관계의 추정이 번복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다만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없었더라도 망인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이러한 사정을 책임제한사유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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