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감염병 대응…누가, 언제, 어떻게 의사결정 내려야 할까

신종감염병 대응…누가, 언제, 어떻게 의사결정 내려야 할까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2.10.15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석 단장, 신종감염병 대응 효율적 조직구조 정책 제안
보건부 독립, 거버넌스 정비, 백신·치료제 개발 R&D 강화
컨트롤타워 '질병청'…민간 전문가 독립된 의견 정책 반영 필요

정기석 코로나19특별대응단장
정기석 코로나19특별대응단장

새로운 감염병과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면 우리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이태 넘게 이어진 고통의 시간이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까?

먼저 보건부 독립이다. 보건부 장관이 신종감염병 방역의 최고 책임자를 맡고, 질병관리청은 방역 실무를 책임지며, 방역 실무에 관한 한 부처 간 협의 사항도 모두 통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질병관리청 지청 설립을 추진하고, 250개 남짓한 전국 기초지자체 보건소 조직과 기능을 보건부와 질병관리청 직할 체계로 변경해야 한다.  

거버넌스 정비도 필요하다. 신종감염병이 발생하면 정부 차원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대응할 것인지를 미리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건의료협의체 구성도 중요하다. 민간의 독립된 견해를 최대한 수용하고 이를 정책에 긍정적으로 반영하는 합리적인 체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백신·치료제 개발 R&D 강화와 함께 지원체계의 일원화도 절실하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감염병 관련 연구는 국가가 주도해야 하며, 이번 기회에 의과학 관련 기초·임상 연구는 보건복지부와 질병청에 주도권을 부여하는 등 R&D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기석 정부 코로나19특별대응단장(한림의대 교수·성심병원 호흡기내과)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미래 신종감염병과 국민건강 향상을 위한 효율적 조직구조 제안' 기고를 통해 신종감염병 대응 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실제적인 개선책을 제안했다. 

현행 감염병 대응체계의 문제점부터 짚었다. 

질병관리청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미흡하다는 진단이다. 청으로 승격되면서 청장의 인사권이 상당히 보완됐지만, 아직도 국장급 이상의 인사는 보건복지부 장관 소관이다. 고위 간부들은 청장보다는 보건복지부의 눈치를 살피게 돼 청장의 영(令)이 서지 않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또 규모에 걸맞는 전문가 확보도 시급하다. 감염병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 긴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수 인력을 대거 확보해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게 필수적이다. 

컨트롤타워 부재도 과제다. 

국가 감염병 대응은 관심, 주의, 경계, 심각의 4단계에 따라 주관 부서를 바꾸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주의 단계까지, 경계로 격상시에는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중수본), 심각 단계 전환시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책임 조직이 된다. 단계별로 구분된 대응체계는 전문가로서의 판단이 정책 과정에 개입하기 어렵다. 방역은 질병관리청이 책임지고 맡는 것이 국민을 위해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판단이다. 

미흡한 감염병 대응 거버넌스도 드러났다.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의료계의 권고는 무시당했으며, 전국 조직을 갖춘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가 협조 의사를 밝혔지만, 일방적인 행정명령 남발로 가장 합리적인 대응 방법을 외면했다는 판단이다. 

보건 분야 부처별 협력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교육부의 학습권을 제한하면서까지 강행한 학생 및 학교시설 방역, 국방부의 장병 감염관리, 법무부의 교정시설 재소자 감염관리 등에서 혼선이 빚어졌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경제 부처는 방역 강화와 완화 사이에서 부처의 이익을 위해 여행 장려, 소비 쿠폰 발행 등 방역 정책에 역행하는 사업들이 시행됐다.

한편에선 코로나19 위험경보를 보내고, 또 한편에서는 감염전파를 촉진하는 정책이 같은 정부 내에서 펼쳐졌다. 지금부터라도 방역 관련 사안은 질병관리청의 질의나 협의를 거쳐 발표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정기석 단장은 가장 우선적으로 보건부 독립을 꼽았다. 현재 보건복지부 내 4개 실 중 보건분야는 보건의료정책실뿐이다. 기획조정실은 일반사무, 인구정책실과 사회복지정책실은 복지 관련 사무를 담당한다. 공무원들은 정책 추진 사안도 다르고 학문적 유사성도 없는 실무를 번갈아 맡다 보니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차제에 학교보건, 환경보건, 산업보건, 국방보건 등 각 부처별로 흩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보건 분야를 통합 관리하는 것은 전문성 제고 측면에서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청도 다른 부처처럼 지청 설립이 필요하다. 지청을 설립하면 지역별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지자체별 맞춤 대응이 쉬워지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도 신속하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50여개의 전국 기초지자체 보건소 조직과 기능을 보건부와 질병관리청 직할 체계로 변경해야 한다. 

거버넌스 정비와 민간이 참여하는 보건의료협의체 구성도 필요하다.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정부 차원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놓자는 얘기다.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의 운영도 내실을 기해야 한다. 정부 입맛대로 정책을 유도하기 위한 위원회는 그릇된 명분만 제공하기 때문에 없는 게 낫다는 인식이다. 민간의 독립된 견해를 최대한 수용하고 이를 정책에 긍정적으로 반영하는 합리적인 체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민간과의 협의체 구성 방안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의사회, 병원회, 간호사회 등 의료기관 및 방역에 관련된 민간 기구들과 지자체 보건 담당 공무원들이 평소에 지역에 맞는 방역체계를 협의하고 비상시 행동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백신·치료제 개발 R&D 강화와 지원체계 일원화도 절실하다. 

국가 주도의 감염병 연구 지원이 필수적이다.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 투자 없이는 누구도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기술분야 R&D 투자 규모는 적지 않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련 예산을 주도하고 있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으로 이어지는 보건의료 관련 R&D는 과기부의 배려 없이는 계획 수립조차 어렵다.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기초연구 투자가 빈약해 겪은 이태동안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지금부터라도 R&D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제 의과학 관련 기초·임상 연구의 주도권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부여해야 한다.   

정기석 단장은 "유능한 의과학자들을 양성하고 과감히 투자 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선두에 서 있을 것"이라며 "특히 최근 10여 년간 의과대학 입학생들은 학업성취도가 이과계에서 가장 높은 인재들이다. 이들의 성실성과 높은 집중력을 잘 활용해서 의대 졸업 후 임상의사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보상과 보람이 따르는 제도를 철저히 계획하고 이행하기를 정부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기부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건의료 관련 부처가 독립적으로 R&D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건강과 사회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어느 부처도 이 명제를 거스르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