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협 의료감정원의 감정 의견 '상반'
대법원 "의료감정 상반된다면 감정 신빙성 꼼꼼히 따져야"
병원 측에 유리한 감정으로 과실 불인정한 2심판결 파기 환송
실신 및 가슴 답답함 등으로 진료를 받던 환자의 사망 원인을 놓고 병원의 의료과실 여부를 따지는 재판에서 상반된 전문가 의견이 제시됐다면, 그 신빙성을 적극적이고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감정의사들이 좀 더 정확한 의견을 밝히도록 재판부가 추가적인 심리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지난 7월 28일 유족이 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유족 측 패소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 환송하고 사건을 다시 심시하라고 대구지방법원에 환송했다.
불안정성협심증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다가 급성심장사로 사망한 환자의 사망 원인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상반된 감정의견을 냈는데, 원심이 상반되는 감정의견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병원 측 손을 들어준 것은 잘못됐다는 판단이다.
망인 E씨는 2015년 7월 9일 오전 5시경 자다가 일어나던 중 실신해 F대학병원(피고 병원)에 내원했고, 불안정성협심증 진단을 받아 90% 가량의 협착이 확인된 좌회선동맥에 풍선혈관성형술을 받았다. 그런데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7월 14일 심부전치료제인 네비레트정 등을 처방받아 퇴원했다.
입원 당시 E씨의 혈액검사 결과 심근손상의 표지자인 심근효소 수치(참고치 0∼0.4ng/㎖)는 최고 0.74ng/㎖로 측정되었다가 7월 13일 0.14ng/㎖까지 감소했다.
약 3주후(7월 28일) E씨는 실신 및 명치부위 답답함 증상으로 F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이전에 측정된 혈압보다 낮은 혈압이 측정되자 의료진은 네비레트정이 서맥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네비레트정의 처방을 중단했다.
E씨는 다시 3주후(8월 20일) 오전 9시경 실신 증상을 보여 F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당시 심근효소 수치가 0.09ng/㎖로 참고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병원 의료진은 E씨의 증상이 기립성저혈압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해 추가적인 검사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퇴원시켰다.
E씨는 8월 27일 명치 부위의 답답함을 호소해 C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같은 날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급성심장사(의증)로 기재됐다.
1심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줘 의료과실을 인정했지만,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과정에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소속 감정의는 망인의 증상을 기립성저혈압으로 진단한 것은 적절했다고 봤다.
그러나 가슴 답답함, 실신 증상이 시술후에도 계속됐고, 심전도 이상, 심근효소 증가 소견, 심부전 표지자 증가 소견이 있었으므로, 기립성저혈압의 원인으로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관상동맥조영술, 심장초음파 검사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했는데, 이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감정했다.
또 원인 질환에 따라 사망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망인에게 추가적인 추적검사가 이뤄졌다면, 예후에 차이를 보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소속 감정의는 제1심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에서, 응급실 방문 당시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했다면, 사인 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망인의 심전도에는 변화가 없고, 혈액검사에서 심근효소의 변화도 없어 추가검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또 심부전 약물 치료만으로도 실신이 발생할 수 있어 약물을 조절하면서 경과를 관찰한 것은 일반적인 접근과정이라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원심은 두 감정의견을 기초로 ▲F대학병원 의료진의 2015년 7월 28일 의료행위와 관련된 과실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고 ▲망인의 심근효소 수치가 참고치에 가까워지는 추세로 감소하는 등 망인이 풍선혈관성형술을 받은 후 계속 호전되고 있었으므로, 8월 20일 심근효소 측정치에 이상 소견이 있었더라도 추가적인 검사나 조치가 필요했다고 보기 어려워 8월 20일 의료행위에 관한 과실도 인정하기 어려우며 ▲설령 F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사망이라는 결과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F대학병원 의료진의 2015년 7월 28일 의료행위와 관련된 주의의무 위반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으나, 8월 20일 의료행위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2015년 7월 9일 0.74ng/㎖ 였던 수치가 4일 후인 7월 13일 0.14ng/㎖까지 감소했고, 망인이 풍선혈관성형술 시행 전의 증상을 다시 호소하면서 응급실에 내원한 사정에 비춰보면, 마지막 검사일로부터 38일 가량 경과한 시점의 수치가 0.09ng/㎖로 측정된 것을 지속적인 호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2015년 8월 20일 망인의 심근효소 수치에 관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소속 감정의는 심근효소의 이상 소견으로 평가한 반면, 의협 소속 감정의는 심근효소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평가했다"며 "원심이 상반된 감정의견 중 심근효소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평가한 감정의견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심근손상이 발생한 후 심근효소 수치가 정상화되는 기간은 어떠한지, 7월에 있었던 심근손상과는 별도의 손상이 발생해 심근효소 수치가 정상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는 없는지, 다른 수치들 및 망인의 증상과 종합할 때 망인의 심근효소 수치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 등을 심리해 상반되는 감정의견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망인에 대한 약물 중단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음에도 여전히 약물이 실신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원심이 F대학병원 의료진의 조치가 일반적인 과정이었다고 평가한 감정의견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감정서의 보완을 명하거나, 사실조회 등의 방법을 통해 정확한 감정의견을 밝히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했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은 이런 사정을 살펴보거나 심리하지 않은 채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망인의 2015년 8월 20일 입원과 관련된 F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 및 사망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했다"라며 "원심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키로 했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