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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벼랑 끝에 선 1차의료

[기획취재]벼랑 끝에 선 1차의료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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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땅 잃는 의사들-조제위임제도의 빛과 그늘(3)

<글 싣는 순서>
1. 오래된 음모 - "약사는 의사다"
2. 의료영역이 무너진다
3. 벼랑 끝에 선 1차의료
4. 누가 합의를 파기했나?
5. 정책실패의 원인과 대안


원가 밑도는 환산지수 '적자' 심각


2003년 9월 김홍신 국회의원은 '동네의원, 건강보험에서만 한해 2억 8,000만원 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의원의 수는 증가했는데, 개별 의원의 수입도 증가했다"며 "의사의 수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도 보험수가 얘기만 나오면 의료계의 요구에 밀려 다섯차례나 수가를 인상해 줬기 때문에 건강보험재정이 파탄났다고 주장하며 동네의원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홍신 의원과 일부 시민단체, 언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의원급 의료기관은 경영위기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강보험공단이 2003년 1~6월 전국 의원급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폐업 조사에 따르면 2만3,116개 동네의원 가운데 5.4%인 1,250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달 동안에만 무려 200곳 이상의 의원이 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동네의원의 휴폐업은 2000년 1,335개(6.9%), 2001년 1,419개(6.8%), 2002년 1,860개(8.2%)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의료계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03년 휴폐업률은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편집자주>

경영악화 한달 200곳 폐업

의료기관 입원·외래아ㅘ 약국에 지급되는 건강보험 총급여비는 조제위임제도 시행 전인 1999년 7조6,528억원, 2000년 8조7,893억원에 머물렀으나 본격적인 시행 효과가 나타난 2001년 12조9,406억원, 2002년 13조4,245억원으로 증가했다. 급여비의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시작된 것은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기형적인 적자구조로 돌아선 1997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은 2002년까지 계속해서 총수입<총지출 행진을 계속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지차액은 1997년 2,408억원의 적자를 시작으로 1998년 5,579억원, 1999년 7,177억원, 2000년 9,164억원에 이어 2001년 급기야 2조3,189억원까지 급증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적기에 보험료를 올리지 못한 채 계속 적자 구조가 누적됐던 것이다. 여기에 병의원 이용이 늘어나고, 노인 진료비 문제가 복합적으로 가중되면서 보험재정은 악화일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양봉민 교수 등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보험료를 연간 7만4천원 낸 사람은 55만원의 보험급여를 받았으며, 25만원을 낸 사람은 65만원, 45만원을 낸 사람은 98만원의 보험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는 적게 내고 혜택은 많이 받는 건강보험의 적자 행진이 누적되면서 이미 재정파탄은 예고됐다. 여기에 조제위임제도라는 암초가 등장하자 재정파탄 사태가 앞당겨졌던 것이다.

예고된 재정파탄

조제위임제도 시행을 전후로 모두 다섯차례의 수가 조정 및 인상이 이뤄졌다. 이 중 1999년 11월 15일 12.8%와 2000년 4월 1일 6%는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 실시에 따른 약가인하분에 대한 수가 조정이므로 수가인상이 아닌 조정이다. 2000년 7월 1일 9.2%와 2000년 9월 1일 6.5%는 수가인상분이다.

여기에 2001년 1월 1일 7.08% 인상건은 기본진료비와 처방조제료 등을 제외한 행위료 총액에 대해서만 이뤄진 까닭에 의원급의 실질 인상률은 1.95%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1999년 11월부터 2001년 1월 1일까지 누적인상률은 17.8%인 셈이다.

재정파탄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2001년 7월 건강보험재정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건강보험수가를 12.31% 인하했다. 정부는 2002년 4월(2.9%), 2003년 1월(2.19% 인하), 2003년 2월 1일(가나다군 처방료 통합), 2003년 3월 l일 초진진찰료, 재진진찰료 등의 상대가치점수를 인하하는 등 강도 높은 수가인하의 칼날을 휘둘렀다.

정부의 수가인하가 의원급에 집중되면서 잠깐 동안 호조를 보였던 동네의원은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전보다 못한 상황으로 급격히 악화됐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의료계는 2000년 9월부터 2003년 3월까지 1차 의료의 근간인 내과계(가정의학과, 내과, 소아과 등) 의원의 경우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찰료(초진료 17.1%, 재진료 20%)가 인하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에 따르면 일일 평균 50명을 보는 내과계 의원의 경우 월 230여만원의 수입 감소가 발생했으며, 초진 기준의 강화에 따라 수입은 300여만원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여기에 진찰료의 야간가산율 적용시간을 오후 6시에서 8시로 늦춤에 따라 연간 1,388억원의 손실을 안겨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전국 2만3,341개 의원급 의료기관 가운데 50명 이하의 환자를 진료한 곳이 1만1,790곳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환자의 대부분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며,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진찰료에 의존하고 있어 진료 환자수의 감소와 진찰료의 인하는 곧바로 수입 감소, 즉 순수익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오창석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저수가 상황에서 개원을 위한 수입의 마지노선을 통상 일평균 진료 환자 수 50명이라고 할 때 1차 진료를 하는 의원의 50%이상이 손익분기점 이하에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전인 1999년 의료기관 외래의 건당진료비는 2만7,944원에서 2002년 2만6,824원으로 줄었다. 내원일당 진료비도 같은 기간 1만5,399원에서 1만5,271원으로 줄어들었다. 2002년 12월 대비 2003년 12월 의원급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수입이 마이너스 19.4%라는 통계는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동네의원의 경영이 악화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문제의 정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조제위임제도 전보다 악화

이처럼 동네의원이 경영위기에 시달리는 배경은 비용이 수입보다 큰 수익구조 속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자 의료정책연구소 경영사회팀장은 "현재의 환산지수는 원가의 89.07% 밖에 되지 않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원가에 미달하는 만큼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며 "의원의 경우 현재의 환산지수 수준에서는 언제나 손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현재의 건강보험 급여비용이 '매출(수입)<비용'의 구조라는데 주목하고 있다.
2002년 의원의 연간 건강보험급여수입(매출액=본인부담+공단부담)이 2억6,747만원인데 비해 이러한 수입의 창출을 위해 소요된 비용은 서울대(2001, 2002), 삼일회계법인(2002), 시립대(2001, 2003), 연세대(2002) 등 어느 조사기관을 불문하고 더 많은 금액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대한의사협회 의정보험실의 '의사 1인이 운영하는 의원의 월 최소 운영경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진료비 크기별로 상위 30%와 하위 30%의 기관당 평균진료비가 5.6배 가량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협 의정보험실 관계자는 "2002년 12월 서울대 경영연구소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한 의원의 순이익률이 17.37%임을 감안할 때 절반 이상의 동네의원의 순이익은 월 200만원에도 못 미친다"며 "동네의원의 경영적자 구조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애경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 연구원이 발표한 '의약분업 후 의원의 수입 분배 변화 분석'에 따르면 2002년 전체 의원의 진료수입분포를 근거로 순위별로 10등분한 결과, 하위 10%에 해당하는 의원들의 총 진료수입은 2002년 기준 0.83%에 불과했으며, 이들 의원들의 의원당 월평균 진료수입은 183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의원 매출 원가이하

2003년 9월 22일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원형 국회의원은 의약분업 시행으로 국민이 추가로 부담하게 된 금액이 지난 3년 간 총 7조 8,837억원이며, 그 중 약국조제료가 4조,7,697억원이, 간접비용 1조9,607억원, 병의원 요양급여비 1조1,532억원임을 밝혀내고 실패한 제도를 재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팀 구성을 제안, 복지부장관으로부터 "의약분업평가단을 구성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연평균 1인당 진료비(입원, 외래 합산)는 의약분업 시행 이전인 1999년 25만297원에서 2002년 29만6,896원으로 4년 동안 4만6,599원 늘어나는데 그쳤으나, 연평균 1인당 약제비는 1999년 7,161원에서 10만8,056원이 증가해 무려 15배(10만895원)가 증가했다.

총급여비 가운데 2.6%(1995년), 9.6%(2000년)에 불과했던 약국 급여비는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후 26.3%(2001년), 2002년(27%)로 급격히 상승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심재철 국회의원도 당시 국감장에서 분업 시행 후 2년 반 동안 조제료로만 4조3,400억원이 발생했다며 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2002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02년 1년 동안 보험료 총수입은 14조3,053억원인데 반해 총지출은 14조7,984억원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무려 4,931억원이나 많이 발생했다.

2000년 대비 2002년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증가액은 총 4조6,352억원으로 집계돼 조제위임제도 시행에 따른 비용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 기간동안 급여비 지출증가액 가운데 약국은 60%인 2조7,810억원, 외래는 29%(1조3,451억원), 입원은 11%(5,091억원)를 차지, 약국이 조제위임제도 시행에 따른 급여비 지출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건강보험재정 가운데 외래환자(종합전문요양기관, 종합병원, 의원, 치과병원, 치과의원, 한방병원, 한의원, 보건기관 외래환자)에게 지출된 비용은 6조1,424억원으로 2000년에 비해 1조3,451억원이 늘어났으며, 입원은 2000년에 비해 5,091억원이 늘어난 3조6,532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약국은 2000년 8,478억원에서 2002년 2조7,810억원이 증가한 3조6,288억원을 기록, 4.3배 늘어났다. 2002년 약국에 지출된 급여비용은 1995년에 비해 무려 35배가 증가했다. 2002년 전체 급여비 가운데 입원 27.2%, 외래 45.8%, 약국 27%로 파악돼 국내 전체 요양기관에서 입원 후 발생한 수술, 검사, 처치 등의 입원비용과 약국에서의 조제 및 약제비용이 대등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조제위임제도 시행에 따른 비용증가의 원인이 상당부분 약국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2년 상반기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은 9조1,914억원에서 2003년 상반기 9조9782억원으로 7,868억원 증가했다. 7,868억원의 증가액은 종합병원 2,639억원(33.6%), 종합전문요양기관 2,091억원(26.6%), 약국 1,629억원(20.7%), 병원 773억원(9.8%) 순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수치는 최근 들어 요양급여비용의 흐름이 대형병원과 약국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강보험 지출요인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수입요인은 한정된 상황에서 의원급에 집중된 수가인하는 동네의원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이다.
남은 선택은 건강보험재정을 대폭 확충하거나, 재정구조를 근본부터 뜯어 고치거나, 조제위임제도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보험재정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형태로 개편하지 않는 한 1차의료를 포함한 한국의료의 붕괴는 예고돼 있다.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에 입각한 신사적인 수가인상 요구는 이미 지난 수가협상 과정에서 결렬됐다. 의료계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점점 좁혀들고 있다. 2월 22일 전국집회는 건강보험의 틀을 구조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한국의 의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국 집회가 엄중한 경고의 자리가 되는가 안되는가의 여부는 결국 회원들에게 달려 있다.

<기획취재 2팀>
편만섭기자 pyunms@kma.org
조명덕기자 mdcho@kma.org
송성철기자 songster@kma.org
이석영기자 dekard@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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