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 필요

의료진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 필요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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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 가장 필요한 곳 '병원'
감정노동 시달리는 의료진, 폭언·폭력·성희롱 노출…법적·제도적 보호 필요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의협신문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의협신문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폭언, 성희롱 시 관련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카드회사 등 콜센터에 전화하면 직원 연결 전에 무조건 나오는 멘트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하고 단순한 내용이 적용이 안되는 곳이 있다. 

얼마전 법원의 한 판결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한 남성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술병에 손가락이 베여 새벽 4시에 응급실을 찾았다. 파상풍 예방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를 작성하라고 하자 '치료를 안하고 퇴원을 시키는거냐'며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10분간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당시 응급실에는 다른 환자 4∼5명이 있었다. 경찰이 출동해서 환자를 귀가조치했고, 환자는 다음날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검찰은 그 남성을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는데, 법원은 치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 항의할 수 있는 사항이라면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술 취해서 다쳐온 사람이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하면,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려도 무죄라고? 법원에서 판사의 판결이 맘에 안든다고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가? 이 어이없는 판결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서글퍼졌다.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 근무하며 외래를 주로 보는 필자는, 응급이나 중환, 소아환자를 보는 과들에 비해서는 환자 진료 관련 스트레스를 겪는 빈도가 낮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환자를 대하는 것이 점점 스트레스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진료가 20∼30분만 지연되면 대기실에서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약과이고, 본인이 예정된 검사를 안하고 와서는 왜 검사하라고 연락을 미리 안해줬냐면서 직원들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도 일 년이면 몇 번은 겪는 일이다.

원래 환자 확인을 위해서 이름을 묻도록 되어있는데, '도대체 이 병원에 몇 번을 오는데 올때마다 그걸 묻냐'면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직원들이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나마 의사는 직원들에 비해 훨씬 나은 편이긴 하지만, 종종 화를 참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스스로 검사나 치료방법을 정하고 와서는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원하는 검사나 치료를 안해주면 불만에 차서 화를 내는 사람, 차트에 멀쩡히 작년에 설명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도 본인이 착각해 놓고는 그런 설명을 안들었다고 우기다가 의사가 인성이 좋지 않다며 민원을 내고 가는 사람, 산정특례가 안되는 사항을 왜 산정특례 적용을 안해주냐고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민원을 내고 가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경우가 있다.

소셜미디어나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를 보면 더 가관인 경우가 많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보호자들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보면, 아직 소아청소년과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얄팍하고 잘못된 지식으로 의사의 진단이나 치료 방침에 의문을 가지는 정도는 약과이고, 예방접종 받고 나서 밤에 문제 있으면 전화하겠다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부모, 18개월 아기의 귀지를 파주다가 외이도에 출혈이 생겼다며 2000만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부모 등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사례가 많다. 

응급실은 아예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멱살을 잡히는 것은 다반사이고, 작년에는 의사가 환자 보호자가 휘두른 낫에 목을 베이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미 심정지로 내원한 환자에게 한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보호자는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툭하면 의사 멱살을 잡는 장면이 나오고, '의사 따귀를 때리고 싶은 사람이 90%이상'이라면서,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냐'고 한 사람이 환자단체 연합회 대표로서 각종 정부의 의료정책관련 위원회에 감초처럼 참여하는 나라이니 뭐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수십 명의 환자보다 진상 환자 한 명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다음 환자 진료에도 영향이 있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의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면 그 트라우마는 훨씬 크다. 심지어는 일을 떠나기까지도 한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들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폭언·폭력·성희롱 등에 노출이 돼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의료진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폭언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무시되고 있는 곳이 병원이다. 의료진들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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