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감독 교수가 전공의에게 의료행위 위임 시 책임 인정 여부 쟁점
대법원 "교수에게 책임 없다" 무죄취지 판결…파기환송심도 무죄 판단
장폐색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해 환자가 사망,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법정구속까지 됐던 대학병원 교수에 대해 법원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4월 28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B대학병워 내과 교수(A교수)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교수는 원심(2심)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지난 2022년 12월 1일 A교수에게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파기환송했다.
원심에서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C전공의는 원심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형이 최종 확정됐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피해자(82세)는 뇌경색 등을 이유로 B대학병원 신경과 진료를 받던 중 복부 X-ray와 CT 촬영 등을 통해 '회맹판을 침범한 상행 대장 종양', '마비성 장폐색, 회맹장판 폐색에 의한 소장 확장'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영상판독 소견을 받게 되자 대장암 치료 등을 위해 2016년 6월 25일 소화기내과 위장관 파트로 전과됐다. 이에 따라 A교수는 피해자에에 대한 주치의로 지정됐으며, C전공의는 A교수의 지도·감독하에 피해자의 진료를 함께 담당하게 됐다.
C전공의는 전원 당일 오전 9시경, A교수는 낮 12시경 회진 과정에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대장암이 있는지 여부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대장 내시경 검사는 쉬운 검사가 아니고, 피해자가 고령인 데다 현재 뇌경색 증상이 있으며 혈액 응고방지제인 아스피린 등을 복용하고 있으므로, 약을 끊고 기력이 회복되는지 등을 보아가며 결정하겠다. 어디까지 치료를 받을 것인지 가족들이 상의해서 일요일까지 알려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2016년 6월 26일 오전 9시경 C전공의는 진찰을 하면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에게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으며 배변이 되고 있다는 이유로 익일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후, 당시 집에 있던 A교수에게 전화로 위 사실과 피해자 및 가족들의 동의도 받았다고 보고했다.
이에 A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대장 내시경 검사와 장정결제 투여를 승인했다. 이후 C전공의는 '오늘 저녁 피해자에게 장정결제 2L를 30분 간격으로 4회에 나누어 투여하고, 다시 다음 날 오전 5시경 같은 요령으로 2L를 추가 투여하되, 장정결제 복용 시 환자를 반드시 앉혀서 사레걸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처방을 한 후 오전 11시경 퇴근했다.
C전공의 처방에 따라 2016년 6월 26일 저녁 8시경부터 장정결제를 투여 받은 피해자는 장정결제 투여로 인한 가스와 장내 분변 등이 제대로 체외로 배출되지 못한 채 대장 내 팽압 증가로 장벽이 엷어지면서 2016년 6월 27일 새벽 1시경 이후 장천공이 발생, 장내 분변 등이 복강 내로 유출됐고, 이에 따라 호흡곤란, 혈액 내 산소포화도 감소 등의 부작용이 발생함으로써 피해자는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해 같은날 저녁 9시 37분경 사망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장정결제 투여를 결정한 과실(제1주의의무 위반) ▲설명의무를 위반한 과실(제2주의의무 위반) ▲장정결제 투여 과정상의 과실(제3주의의무 위반) 등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A교수에게 금고 10개월에 법정구속, C전공의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원심(제2심) 재판부도 유죄를 유지하면서 A교수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 C전공의에게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원심재판부는 제1주의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제2, 제3주의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원심판결에 대해 A교수와 C전공의는 유죄판단 부분에 대해서만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에서는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다른 의사에게 의료행위를 위임했을 때, 위임받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위임한 의사에게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전적으로 위임한 것인지 여부) 및 그 판단기준 ▲전적으로 위임한 경우 위임의사에게 설명의무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특별한 사정 유무를 판단할 때 고려돼야 할 요소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A교수와 관련 "해당 의료행위가 위임을 통해 분담 가능한 내용의 것이고, 실제로도 그에 관한 위임이 있었다면, 그 위임 당시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고 이를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위임한 의사는 위임받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C전공의가 분담한 의료행위에 관해 A교수에게도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려면, 원심으로서는 부분 장폐색 환자에 대한 장정결 시행의 빈도와 처방 내용의 의학적 난이도, C전공의가 내과 2년차임에도 소화기내과 위장관 부분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미흡했거나 기존 경력에 비춰 보아 적절한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심리해 C전공의에게 장정결 처방 및 그에 관한 설명을 위임한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있었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A교수가 C전공의를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수행하지 않은 장정결제 처방과 장정결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설명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단정한 원심은 의사의 의료행위 분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환송했다.
반면, C전공의와 관련해서는 "C전공의의 제2주의의무, 제3주의의무 위반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의료행위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죄에 있어서의 업무상과실, 설명의무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