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는 규제인가?

신의료기술평가는 규제인가?

  • 허대석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8.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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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면제 주장 '위험'…치료법 공인 위해 근거 필요
가습기 살균제, 생산업체 주장 믿고 허가…1553명 사망

허대석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명예교수 ⓒ의협신문
허대석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명예교수 ⓒ의협신문

사람의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신약과 신의료기술에 대한 안전성 검증은 꼭 필요한 중요한 절차임에도, 법적으로 요구되는 검증 단계를 불합리한 규제라는 이유로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 평가 절차를 없애거나 축소해달라고 요구해온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은 개발한 치료제나 의료기기를 자신들이 주도한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하루빨리 상업화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성 검증이 부족했던 의료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동맥 판막 질환자를 대상으로 개발된 종합적 대동맥근부 및 판막 성형술인 카바(CARVAR) 수술이다. 카바수술에 필요한 재료는 2007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고 수술에 사용되었지만, 새로운 수술 방법을 개발하고 그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의사는 카바수술에 사용되는 재료를 제작 판매하는 회사의 이해관계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보험 급여 인정을 받기 위해 개발자가 주장하는 치료 효과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수술법보다 카바수술을 받은 환자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카바수술 부작용 사례를 분석한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발표되고,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보건복지부는 2012년 11월 카바수술에 대한 한시적 비급여 고시를 폐지했고, 2013년 7월에는 수술에 쓰이는 치료재료에 대한 비급여도 목록에서 삭제하면서, 더는 카바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다른 사례는, 폐암에 대한 국내 개발 신약으로 식약처의 조건부 승인을 받고 건강보험 급여까지 인정받았으나, 임상시험 중 발생한 사망자에 대한 보고를 지연했음이 밝혀져,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제약회사가 스스로 개발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에서 개발되어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신약 36개 중 42%에서 허가된 지 3년이 지나도 임상시험 결과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 효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직 없다.

대한민국 식약처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를 승인했고 현재까지 총 4개의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품목허가와 함께 시판 허가까지 내주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다. 그러나 연골 재생 목적의 치료제만 정상적인 품목 승인 절차를 마쳤고, 나머지 3가지 줄기세포 치료제는 조건부 승인을 받은 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품목 승인 조건을 충족시킬 임상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정식 품목허가를 내준 줄기세포는 연골 재생 목적의 치료제뿐이다. 유럽의약품청(European Medicines Agency, EMA)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단 한 건도 정식품목으로 허락해주지 않고 있다. 

2012년 [Nature Medicine] 학술지에서 한국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임상시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가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또한, 2019년 [Nature] 학술지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에 고가의 치료비를 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식약처에서 품목허가를 받는 과정에는 개발자가 제출한 연구자료가 주로 반영된다. 그런데 동일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을 다른 전문가가 평가한 연구 결과가 개발자가 내놓은 결과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식약처와 같은 기관의 품목허가와 별도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필수적으로 거치게 하는 이유는,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편향되지 않은 결과를 현장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이런 고찰, 평가 과정이 필수적인 또 다른 이유는 특정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의료기술은 대단히 많은 데 비하여 의료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발업체의 주장만 믿고 건강보험 급여까지 인정해준다면,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어 필수의료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의료기술평가의 목적은, 어떤 의료기술이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비교평가를 통해 밝히고 이를 의료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약, 신의료기술을 개발하여 하루라도 빨리 난치병을 극복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안전성 점검 등 필수적인 절차를 면제해 달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안전성 점검 등 필수적인 절차를 면제해 달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인체에 안전하다"라는 생산업체들의 주장만 믿고 정부 기관이 공산품으로 판매 허가를 해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자가 6,817명, 사망자만 무려 1,553명이었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그러나, 이런 조급함 때문에 안전성 점검 등 필수적인 절차를 면제해 달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인체에 안전하다"라는 생산업체들의 주장만 믿고 정부 기관이 공산품으로 판매 허가를 해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자가 6,817명, 사망자만 무려 1,553명이었다. 이 사건에서 기업들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묵과했다는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우 임상시험에 진입한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10% 수준이다. 또, 조건부 승인을 받은 뒤 5년 이상이 지났지만 제3상 임상시험결과를 제출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임상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경우가 거의 절반이다.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한 연구자는 누구나 자신이 개발한 치료법이 우수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이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신뢰할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일은 객관적인 근거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본지 대표 칼럼 [청진기] 필진으로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가 참여합니다. 허대석 명예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암센터 소장·호스피스실장·대한의료윤리학회장·대한암학회장 등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초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을 맡아 근거중심의학의 기틀을 다졌고,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이바지한 허대석 명예교수는 2021년 정년 퇴임 이후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연구사업단장'을 맡아 의료 질과 국민건강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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