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먼, 죽음보다 가까운', 필수의료 최전선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를 가다

'생명보다 먼, 죽음보다 가까운', 필수의료 최전선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를 가다

  • 이준승 명예기자(가톨릭관동의대 예과 2년) arryn2022@cku.ac.kr
  • 승인 2023.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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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전국 최고 외상센터 키워나갈 것"
지속가능한 발전 위해 전폭적 지원·관심 필요…'외상센터' 넘어 '재난병원' 꿈
'치료는 가끔, 치유는 자주, 위로는 항상'…"환자 아픔 공감하는 좋은 의사 되길"

 

ⓒ의협신문
ⓒ의협신문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3번 출구로 걷다 보면 오래 지나지 않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전쟁 이후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원을 받아 '국민의 건강증진과 국가 보건의료의 발전'이라는 사명으로 1958년 출범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NMC(National Medical Center)'라고 부르는 이유다.
'공공의료'라는 대의를 가슴에 품은 의료진들이 분주한 이곳에는 생명과 죽음 사이 사투 속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필수의료 최전선이 있다. '생명보다 먼, 죽음보다 가까운' NMC 외상센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NMC 외상센터는 서울 유일의 권역외상센터이다.
김영환 센터장은 외과 전문의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서 일했다. 2018년 외상센터장으로 부임, 지금까지 센터를 이끌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던 찰나, 그는 급하게 걸려 온 전화를 먼저 받았다. 웃으며 전화를 끊은 김영환 센터장은 이윽고 설명을 이었다. 맡은 환자가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한 것이다.

Q. 어떤 환자였나요?
좀 전에 퇴원한 환자는 사다리 위에서 일하시다가 떨어져 머리를 많이 다친 분입니다. 처음에는 좀 손상이 심해서 상태가 안 좋고 의식도 거의 없었는데, 두 달 만에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하셨습니다.

Q. 두 달의 입원 기간이었다면 쉬운 경우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이분은 머리만 다치신 분이긴 한데 대부분은 다발성 이상, 즉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친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재원 기간은 보통 한 달 전후가 대부분이죠. '외상'이 그런 측면에서 경영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김영환 센터장은 2002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2018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외상중환자실장·미래기획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외상학과 중환자의학을 동시에 전공했다. [사진=이준승 명예기자] ⓒ의협신문
김영환 센터장은 2002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2018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외상중환자실장·미래기획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외상학과 중환자의학을 동시에 전공했다. [사진=이준승 명예기자] ⓒ의협신문

Q. '외상외과 전문의'가 최근 '외상학 전문의'로 이름을 바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2012년부터 대한의학회 인증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 제도가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외과라는 말이 붙으니 외과의사들만 지원자격이 생기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외상진료는 외과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다학제적인 치료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이 때문에 2020년부터는 '외상학' 세부전문의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외상이라는 학문에 관해 공부하고 진료하는 사람은 모두 세부전문의 자격을 딸 수 있게 한 거죠. 이러한 다양성 때문이겠지만, 외상외과는 아직 완전히 커리큘럼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Q. NMC 외상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먼저 NMC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립병원입니다. 국립병원으로서의 장점은 일단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환자 치료 질 향상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에 있으므로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지하철만 있으면 되니까, 저는 차가 없거든요(웃음).
NMC 외상센터는 70병상 규모입니다. 아직 의료진 수는 충분하지 않지만, 수준은 전국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환자치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권역외상센터와 마찬가지로 외상환자만을 위한 시설과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외상 전용 장비를 외상환자들이 사용하도록 중앙응급의료센터 외상필수의료팀에서 계속 관리하고 있습니다.

Q. '외상'이라고 하면 높은 근무 강도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사실 할만합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보람이 생각보다 큰 동기부여가 돼요. 저는 매일매일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중에서도 환자가 건강해져서 퇴원할 때가 제일 보람차죠. 물론 근무 강도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할 순 없는 것도 사실이죠. 외상센터가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새로운 인원이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지원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만약 유인책이 마련되어 충분한 인력이 공급된다면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면서도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Q. 외상센터의 앞날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앞날이라고 한다면 전망과 목표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망은 NMC의 강점이 많습니다. 첫 번째로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공병원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새로운 병원을 짓고 있어 좋은 인프라를 마련할 것이라는 점이죠. 물론 약점도 있겠지만, 희망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외상에만 있지 않습니다. 국가 최고의 '재난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ACS(Acute care surgery)에 관한 담론이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2000년도 초반부터 육성하고 있습니다. ACS란 외상을 전공한 의사들이 그 특성상 중환자 치료, 응급수술 등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서 외상외과 전문의에게 권한과 역할을 더 넓히는 것이죠. 저는 그런 제도를 정착시켜 센터를 키우고 싶습니다. 또 한강성심병원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화상전문병원처럼 외상센터에서 화상도 같이 보려는 목표도 있습니다. 두 분야는 교집합이 매우 많으므로 운영효율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화상은 또한 NMC가 만들고 있는 중앙감염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들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감염, 외상, 화상을 묶어 국가재난병원으로의 확장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NMC 새 병원 조감도.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NMC 새 병원은 김영환 외상센터장이 그리는 새로운 미래다, [조감도=국립중앙의료원] ⓒ의협신문
NMC 새 병원 조감도.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NMC 새 병원은 김영환 외상센터장이 그리는 새로운 미래다, [조감도=국립중앙의료원] ⓒ의협신문

Q. 선생님이 느끼는 '보람'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일단 환자들이 퇴원하는 하루하루가 제일 보람이고요. 그거 못지않게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외상센터는 환자를 다 치료하고 회복해서 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장애 때문에 일생과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돌아가시게 되죠.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지만, 환자와 가족에게 의료진들이 드릴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들도 위로를 받지요. '치료는 가끔, 치유는 자주, 위로는 항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굳게 믿는 말입니다.

Q. 위로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어떤 게 있을까요?
대부분 병원에는 임종실이 없거나 있더라도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병원처럼 오래되고 공간이 좁은 병원에는 임종 공간이 없습니다. 얼마 전 젊은 여성이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슬픔은 가늠하기도 어려웠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고, 기관튜브를 제거하기 전 가족에게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병원 경영진과 간호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 병원에 남아있던 1인실을 임종실로 활용하였습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환자분은 가족과 시간을 함께했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그 방은 현재까지 임종실로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는 공간인 셈이죠.

Q. 어떻게 보면 작은 방 하나를 내어 준 것뿐인데,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한 시간, 두 시간 정도 가족에게 충분히 어루만지고, 기도하고,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시간 속에서 서로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떠나는 과정이 조금 더 존엄하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중환자가 되었을 때 가족은 환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더라고요.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서로가 공감과 위안을 주고받습니다. 일종의 신원(伸冤, 원통한 일을 푸는 것)이죠. 의사는 그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김영환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승환 명예기자. 존엄한 죽음과 가족의 위로를 고민하던 김영환 센터장의 작은 요구가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협신문
김영환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준승 명예기자. 존엄한 죽음과 가족의 위로를 고민하던 김영환 센터장의 작은 요구가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협신문

Q. 외상센터장으로 꽤 오랜 시간 근무하셨는데, 사람들이 제발 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것'들이 있다고요?
음주운전이죠. (음주운전)사고가 너무 잦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차 시동을  걸 때 음주측정기를 불어야 시동이 걸리게 하는 잠금장치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또 자전거를 타실 땐 꼭 건널목에서 내려야 합니다. 많은 환자가 자전거 사고로 병원을 찾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산업재해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고는 전문가나 규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Q. 의료기관이 집중된 서울이 오히려 외상환자들에겐 좋지 않은 환경이라고 들었습니다.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예방 가능사망률을 보입니다. 예방가능사망률이란 환자의 사망이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하지 않았을지 정량적인 기준으로 측정한 비율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명이 외상으로 사망했을 때 전문가들이 검토한 결과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환자가 없었다면, 예방 가능 사망률이 0%인 거죠. 0%라면 완벽한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약 50%에 달했지만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이 15%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그런데 서울이 20%입니다. 미국은 주마다 조금 다르지만 3%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자원의 투입이죠. 어느 정도 다치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리한 트라우마 맵이 잘 정비되어 있고, 소방·현장·병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서울이 이렇게 된 것은 인력 부족이 제일 큰 원인입니다. 여유 인력이 없으니 초기 대응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시간이 생명인 외상 사망률이 올라가게 되는 거죠. 
사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중앙정부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더 필요합니다. 운영 측면에서 지자체가 그 지역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울산 지역은 산업재해가 잦습니다. 인천의 섬 지역이나 강원도는 헬기 이송이 특히 중요합니다. 각 권역이 협력 가능한 병원의 수와 규모도 다릅니다. 지방정부가 권역외상센터와 같이 협력하여 그 지역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Q. 또 다른 지역적 특징이 있을까요?
전 직장과 이곳에서 체감하는 차이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서울은) 자살하는 환자가 훨씬 많습니다. 상대적일 수 있지만 삶이 어려운 사람이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서울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자살은 모두 외상입니다. 그래서 저희 쪽으로 많이 오는데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보면 마음이 아프죠.

Q. 마지막으로 외상을 전공하고 싶은 의대생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실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 전화번호를 드리고 싶네요(웃음).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면 외상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치료는 물론 위로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의사 개인의 동기부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세부 전공을 선택할 때 내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설득하는 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도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러한 과정이 불편하다면 환자를 직접 마주하지 않는 과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준승 명예기자는 외상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영환 센터장뿐만 아니라 임민주 외상 코디네이터 간호사 등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여러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과 위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무기로 죽음에 맞서는 그들이 있다면 '생명보다 먼, 죽음보다 가까운' 외상센터가 아니라 '죽음보다 먼, 생명에 가까운' 외상센터가 걸맞은 표현이 아닐까? ⓒ의협신문
이준승 명예기자는 외상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영환 센터장뿐만 아니라 임민주 외상 코디네이터 간호사 등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여러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과 위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무기로 죽음에 맞서는 그들이 있다면 '생명보다 먼, 죽음보다 가까운' 외상센터가 아니라 '죽음보다 먼, 생명에 가까운' 외상센터가 걸맞은 표현이 아닐까?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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