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계약서나 상속포기서 등에 버젓이 날인하고 나서 '사실은 협박 및 강요에 의해서 작성한 것'이라며 뒤늦게 번복을 시도하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그 '협박 및 강요'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녹음이나 영상파일 등을 확보해두지 않은 이상 문서의 효력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법적으로 해결가능한 모든 사안이 그렇듯, 민사상 청구의 핵심은 증명을 얼마만큼 해내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1년차 전공의가 업무상과실치상·의료법위반으로 항소심에서도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의료계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본 칼럼에서는 수련생활과 관련한 몇 가지 분쟁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 1. A씨는 모 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재직기간 동안 업무를 게을리한다는 이유로 선임 전공의로부터 주먹으로 가슴을 수 차례 맞고, 발로 정강이를 차였다. 그밖에 다른 전공의로부터도 멱살을 잡히는 등의 폭행을 당한 그는 충격을 받고 병원을 그만두었다. A씨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당시 연루된 전공의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례 2. 내과 전공의 B씨는 수련을 시작한 때부터 매일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면서 근무했다. 공식적인 업무 시간 이후에도 당직실에서 대기하면서 수시로 진료하는 방식으로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했다. 와중에 해당 과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서 발표 준비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담당 교수로부터 질책을 받은 그는 극도의 수면 부족과 우울 증세로 삶을 마감했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는 청구를 하는 한편, 병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례 3. C씨는 수련과정을 밟기 위해 병원에서 채용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병원 소속 폐에 결절로 보이는 병변이 발견돼 경과 관찰을 권유 받았다. 해당 병원 인턴으로서 각 과를 돌면서 수련을 받던 그는 그 해 말 조직검사 결과 폐암으로 판정받고 투병 끝에 사망했다.
유족은 "신체검사 당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고, 주당 80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비정상적인 근로조건에서 폐암이 급속도로 진행하게 하였다"면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첫 번째 사례에서 A씨는 관련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들을 대상으로 당시 지출한 치료비와 위자료는 물론, 전문의 또는 전공의 1년 연봉 상당의 금액도 청구했다. 이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수련과정이 지연됐다는 맥락에서다.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이 유죄로 인정한 사실은 민사재판에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므로(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다243430 판결 등 참조), 법원은 A씨의 치료비와 위자료 청구를 인용하되 1년 연봉 상당의 금액은 배상 범위에서 제외했다.
전공의 수련계약 해지는 A씨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선택으로, 1년 연봉 상당의 손해는 스스로 수련과정을 그만둬 발생한 것일 뿐 폭행 등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달리 이를 인증할 증거도 없다는 판단이다.
두 번째 사례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부정한 판정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최초 통보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족은 행정소송까지 간 끝에 승소했다.
그리고 병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수련시간 주당 최대 80시간 등을 명시한 '전공의 표준 수련 지침' 등의 자료를 제출하면서 적극 다퉜다.
위 지침을 두고 재판부는 "적정한 전공의 근무환경에 대한 일응의 판단지표가 될 수 있다고 보이는데, (중략) 고인의 근무조건이 법령상, 지침상 예정된 최저기준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열악했다는 사정은 이 사건 사고에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은 장례비와 위자료, B씨의 일실수입을 반영한 상속분을 포함해 1심에서는 70%, 피고측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40%의 비율로 병원측의 책임을 제한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사례에서 하급심 법원은 C씨에 대한 진료기록 감정결과 병원측 주의의무 위반 사실이 인정되지 않고, 전공의 표준 수련 지침 제정은 C씨의 수련기간 이후 권고적 성격으로 이뤄진 점 등을 들어 병원의 손을 들어줬고, 사안은 항소심에 이르러 강제조정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위 사례들에서도 인용된 '전공의 표준 수련 지침'이 미친 영향과,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전공의 수련환경은 예전만큼 가혹하지 않고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모든 법적 분쟁은 철저한 증거 수집이 기본이므로,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추후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법적 조력을 받아 대처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