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문제 거듭 누적…변화만이 위기 타개할 활로"
크레졸(cresol) 냄새로 상징되었던 어릴 적 '의료'를 돌이켜보면, 의원이나 병원의 문을 들어서면서 크레졸 냄새를 맡고, 의사와 '백의의 천사'로 불리던 흰 캡의 간호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과 치유를 느끼곤 했던 기억이 있다. 경제·사회적으로 삶이 버거웠던 서민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높았고,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은 집안의 큰 우환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천성적으로 순수한 인정과 인륜이라는 도덕적 관념이 살아있었던 탓에 특히 의사나 간호사들에 대해서는 남다른 존경과 신뢰의 정서가 있었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성공적인 산업화로 국가 경제가 급성장하였고,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는 통치자의 결단으로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 후 꾸준한 국가의 경제 성장과 함께 의료분야도 급속도로 발전해왔고, 의료보험제도도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 발전되어 왔다. 이제 한국의 의료는 저비용, 양질, 그리고 고효율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가히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실상부한 의료 천국이 되었다. 의료비는 여타 국가들에 비해 저렴하면서, 진료 의사의 의학적 지식의 수준과 의술의 숙련도, 의료 자재의 질, 그리고 의료 접근의 용이성과 신속성 등에서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의료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해외 동포들이 부대비용을 감안하더라도 고국에서 진료받고자 하는 주요인은 저렴한 진료비뿐 아니라 의료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결과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동안 시행착오나 사회적 갈등 등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의료파업이라는 아픈 역사도 있었고, 크고 작은 이슈들과 다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영광의 밑바닥에는 국가재정을 튼튼하고 넉넉하게 만들어 놓은 역대 정부와 공무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으며, 동시에 의료의 중심에 국가 정책에 협조하고, 의료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며 바른 의료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해 왔던 의사를 비롯한 전 의료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잘 나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우리의 의료현장에서 생소한 용어와 현상들을 통해 한국 의료의 진상을 보게 되었고, 이들이 결코 단순하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의료의 본질과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붕괴돼가는 현상들로 인식되면서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향한 의료에 '기피과'가 웬 말이고, 공공의료, 필수의료가 어떻게 따로 있을 수 있나? 의사가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고 소위 주요 과(major)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가 간판을 내리겠다며 읍소하는 모습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세계 경제 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인 것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삐걱거리는 아픔의 증상들이 있어 왔고, 이를 염려하며 올바른 대책을 마련하자고 소리쳐 왔었음에도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병소가 깊어지면서 심각한 증상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례들을 보면 의료에도 3D니 4D니 하는 기피 과가 생기고, 전공의 수련 중 전공을 바꾸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늘었다. 의료 현장에서 폭력은 방치되고 의사가 피살되기도 하였으며,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기도 하였다. 불신과 범죄를 전제로 수술실에도 CCTV가 설치되었고, 구조적인 문제에 의한 결과까지도 의사 개인을 형사 처벌하였다. 급기야 소아청소년과가 통째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비명을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대학병원과 응급실의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대학병원의 임상 교수들조차 환자를 보고 처방전 발행하는 기계처럼 되었고, 과다한 진료업무에 시달리며 탈진했다고 한다. 급증하는 의료인에 대한 소송과 형사적 처벌, 그리고 의료제도와 관련 법률에 관한 잘못된 판결은 의료의 근간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의사들이 국가정책에 협조하고 최일선에서 희생적으로 환자 진료에 진력하던 중에도 감사나 보상은 고사하고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하고 의사를 옥죄이는 '간호법', '의사면허 박탈법' 등 잘못된 법들이 만들어져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책으로 참 의료의 실현을 위해 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찾고 해결하면서 때로는 의료와 의료인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어야 할 주관부서는 방관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의료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의료계에 대해서는 수가 조절, 의료비 지원이라는 유화책을 얘기하며 한편으로는 형사처벌 강화 등으로 대처해 왔다. 그때마다 언론이나 의료의 주변 단체와 조직들은 인권과 사회정의를 떠들면서 의료를 폄훼하고 의사를 사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매도하였으나 정작 그들의 마음속에 생명을 향한 의료의 숭고한 가치나 의료인과 환자의 생명과 안전은 없었고 국민과의 신뢰 관계마저 이간질하고 훼손해왔다. 한국의 최고 우수한 상위 0.2%의 두뇌가 의과대학에 몰리고 있다고 염려하기에 앞서 왜 이들이 의대로 몰리고 이제는 이들마저도 좌절하고 있는지 그들의 생각이나 이유를 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의료제도에 있어 몇 가지 핵심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자유 민주국가의 가장 핵심 가치인 자유 시장 경제체제에서 건강보험은 민간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강제되고 있다.
의료보장제도에는 일반적으로 독일, 프랑스 등에서 택하고 있는 사회보험방식(SHI, Social Health Insurance)과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국민보건서비스방식(NHS, National Health Service)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위의 2가지 형태를 병합시켜, 국민이 매월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험료로 납부하고 공적 기관인 단일 보험기관을 통해 전체 의료를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NHI, National Health Insurance)이라는 독특한 제도로 우리나라와 대만이 채택하고 있다.** 어쩌면 국가가 통제하기에 가장 편리한 점만을 선별하여 만든 제도를 통해 민간기관을 완전하게 강제한다는 것이다.
2) 의료는 국가가 부여하는 면허를 받고 환자를 진료하는 극히 전문성을 띠는 분야로서 검사나 치료에 있어 구체적인 의료행위의 결정체가 처방이고 여기에는 책임도 동반된다. 따라서 면허를 걸고 이루어지는 의사의 처방전 발행에 합당한 비용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3)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의 존귀함을 생각한다면 이를 살리고 고치고 치유하는 의료에 합당한 가치부여와 비용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4)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보건의료정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의료가 정치적 수단으로서 단순한 시혜형식이 된다든지, 특정 목적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나 왜곡된 언론 등으로 인해 본 궤도를 이탈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급격한 신생아의 감소와 노령 인구의 증가, 평균 수명의 증가 등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의료수요에 맞추어 의료 직능 간의 업무 조정, 전문 의료인력과 시설에 대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5)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고 평가하는 전 과정에 임상 의료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여 의료현장의 실체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정책들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의료문제에 관여하는 다양한 명분의 위원회나 단체, 조직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 의료의 내용이나 현장을 모르는 비임상전문가가 많고, 정책 실무자 중에도 정기적인 순환근무로 전문성과 책임감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라도 이런 연유로 의료제도가 왜곡되거나, 막대한 의료보험재정이 주인 없는 눈먼 돈으로 치부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단순한 노파심이라면 좋겠다.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도 더욱 염려되는 것은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 이제까지 주도적으로 의료제도를 입안하고 의료현장을 규제하고 단속하고 관리해 온 주체가 있음에도 작금의 상황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 추궁도 없고 그러다 보니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대책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간호법, 의사면허박탈법이 처리되는 과정과 엄중해야 할 의사면허 관리에서 의학전문대학원 부정 입학자에 대한 학사 처리 과정에서는 당당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였으며 의료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간호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 무산된 것은 다행이나 이것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라 여겨진다.
그러지 않아도 의료분야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특수성 때문에 일반적인 직능분야와는 다르게 엄격한 내외적인 규제와 통제를 받아왔다. 법과 규정을 통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제와 관리를 받는 것은 물론 사회문화적 가치 기준에 의한 양심과 윤리·도덕적인 통제도 받아왔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의료의 가치는 크게 왜곡되고 의료제도의 골격마저 붕괴해 가는 허망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거짓 선동과 폭력, 그리고 이에 쉽게 선동되는 사회 현상으로 인해 또다시 갈등과 혼란 속에 사회 에너지가 고갈되고 탈진해 가는 소용돌이에 의료계도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노동계와 법조계를 위시하며 교육계가 허물어졌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최고 지식인 그룹으로 자부하며 참 의료를 위해 잘 견디며 지켜왔던 의료계마저 이제 붕괴의 길로 들어선 것 같아 아쉬움과 우려가 큰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에 대해 의료인들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급속하게 변해가는 국내외의 시대 조류와 생활 패턴에 따라 질환의 종류나 발병 빈도, 그리고 중증도도 변하고 있고, 그동안 겪었던 전염병이나 천연 재해 같은 예상치 못하는 의료비상 사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하여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발전시켜 왔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의미 없는 이견이나 갈등으로 공연히 사회적 지탄을 자초했던 일은 없었는지, 세분화된 의료 직능 간, 과 간, 세부 전공 간에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영역확장을 위해 서로의 갈등을 키우고 혼란을 가중시켜 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자고로 의사들 사이에서는 책만으로 배울 수 없는 의술의 전수와 의료인으로서의 동료 의식으로 동기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선후배 간에 존경과 신뢰로 굳건하게 이어져 왔던 아름답고 끈끈한 유대관계도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개탄하는 소리도 크다.
어떻든 국가 경제 규모와 더불어 의료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복잡해지는 국내외 상황에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이미 의료의 지평이 크게 바뀌어버린 것이다. 작금의 의료와 의료인은 뜨거운 프라이팬 속에서 볶아지는 콩이나,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룻배 신세요, 범죄자를 향한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위기의 상황이라 여겨진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의료 현안 하나 하나에 매몰되며 간헐적으로 던져지는 수가 조절이나 의료비 지원 같은 달콤하고 고소해 보이는 이런저런 양념이나 온전치 못한 밧줄에 매달리며 일희일비하는 것으로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확실한 디딤돌이나 튼튼한 구명줄이 아니라면 발버둥 칠수록 수렁에 더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의 빛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옳고 바름'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의료의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하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마련하여야 한다. 국민이 건강하려면 의료가 건강해져야 하고, 정책 당국과 정책이 강건해야 한다. '건강'이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서 가능하며 그 바탕 위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의 존엄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지켜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대학과 대학병원, 종합병원, 그리고 대학의 교수와 봉직의가 더욱 적극적으로 함께 나서야 할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동안에도 해왔었던 것처럼, 의학과 의료의 숭고한 가치 실현을 위해 의사들만이라도 깊은 성찰과 함께 외로운 싸움이라도 지속해 가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루고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특단의 조치가 절실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 의료보장제도 https://brunch.co.kr/@dailynews/949
** 한국 의학의 발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 한희철. E-Newsletter: vol 26, Jan 2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