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 연 평균 755명...영국의 581배
의료사고 형사처벌 부담 완화...의사가 꼽는 필수의료 최우선 과제
보건복지부, 제도개선 협의체 예고...의료사고 특례법 제정 이어질까
#. 최근 5년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는 연 평균 754.8명 수준이다. 근무일수 기준으로 매일 3명의 의사가 의료과오를 이유로 검찰의 기소장을 받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의사 기소 건수는 영국의 580.6배에 이른다.
#.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높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며, 이중 25%가 금고형 이상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의료인들은 의료수가 정상화 다음으로 의료사고 형사처벌 부담 완화를 필수의료 회생을 위한 우선과제로 꼽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의사 사법 리스크 완화 방안에 의료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방안 마련을 위한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 구성을 공식화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과 이들이 내놓을 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 구성은 지난달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정이 합의했던 사항으로, 최근 필수의료 혁신기조와 맞물려 물살을 타고 있다.
■ 하루 3명 꼴 형사 기소되는 의사들, 처벌 두려워 필수과 꺼려
의료사고 형사처벌 부담 완화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대책 중 핵심으로 꼽는 과제 중 하나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서 지난해 의사 11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5.8%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를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의 원인으로 짚었으며, 28.8%가 의료사고로 발생하는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를 필수의료 지원 우선과제로 꼽았다.
이는 수가 정상화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호소하는 응답자는 특히나 산부인과와 응급의학과 등 필수과목 전문의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의 원인으로 의료사고 법적 부담을 꼽은 응답자는 산부인과의 경우 30.8%, 응급의학과는 28.2%로 평균 이상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그저 의사들의 '우려'에만 그치지 않는 얘기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기소와 처벌이 여타 국가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2018년 국내에서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 평균 754.3건으로, 일본의 입건송치 건수(51.5건)에 비해 14.7배, 영국의 기소 건수(13건)에 비해 580.6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약 3명의 의사, 전체 활동의사 1000명 중 5명 꼴(0.5%)로 형사기소를 경험한다는 의미다.
일본의 경우 같은 기간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경찰에 신고된 의사가 연평균 82.5건으로 활동의사수 대비 0.02%이며, 입건되어 검찰에 송치된 의사는 연평균 51.5건으로 활동의사수 대비 0.01% 수준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도 높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며, 이 가운데 67.5%에 해당하는 239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특히 유죄를 선고받은 의사 4명 중 1명은 금고형 이상 징역형의 중형에 처해졌다.
형사재판에 기소된 의사의 숫자가 비교적 많은 일본에서도 실제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의사는 최근 18년간 139명에 불과하다. 이 중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제외하고 실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숫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히 적다.
■ 의료인 사법 리스크 완화, 해법은 '의료사고 특례법'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그간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방안을 지속적으로 정부에 제안해왔다. 의료분쟁특례법의 제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한의사협회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유독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처벌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의 남발은 방어진료와 위험과목 지원 기피현상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해왔다.
"현재에도 많은 의료진들은 자신의 선한 의료행위가 환자의 생명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변질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중한 부담감 속에서 의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짚은 의협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진들이 마음놓고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진료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필수의료 특례법 제정을 요구했다.
의협은 정부와의 대화채널인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회생을 위한 핵심 과제로 의료인 사법 리스크 완화 방안을 수차례 다뤄왔다.
정부가 최근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 구성을 공식화하면서 구체적인 결과 도출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으로, 제도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작업이 힘을 받을 지 주목된다.
대외적인 환경도 나쁘지 않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잇달아 발의되면서, 조속한 법 개정을 위한 밑그림이 갖춰진 것.
현재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은 이종성 의원 안·신현영 의원 안·홍석준 의원 안 등 모두 3건으로, 이들 모두 의료과실과 관련한 의사의 형사상 책임을 면제 또는 감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감면의 범위는 법안별로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이종성 의원과 신현영 의원의 경우 각각 '필수의료종사자에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로 특례범위를 한정하고 있는 상황.
반면 홍석준 의원안은 '필수의료행위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해당하는 의료사고를 발생시킨 필수의료종사자에 대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고 규정해, 형사처벌 감면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과도한 형별화 경향으로 인해 회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신속하게 논의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며 "회원들이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없이 안전하게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