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다." 의대정원 증원 문제를 다루는 보건복지부의 태도에 관한 얘기다. 이정도면 무책임을 넘어 의도적이며, 유해(有害)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18일 의정협의체에서 "각계가 의사정원 규모에 대한 의견과 그 근거를 공식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만큼 의협도 공식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정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 정부가 '적정한 의대정원 숫자를 써내라'는 공문을 일방적으로 발송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는 의협의 문제제기에, 정부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 지자체에서 2000명에서 3000명, 최대는 6000명까지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게 발언의 근거다.
정 정책관의 주장은 출발부터 잘못됐다. 의대정원의 문제는 객관적인 근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계할 일이지, 여러 사람의 '주장'을 듣고 다수의 의견이 모이는 쪽으로 결정할 사안 자체가 아닌 까닭이다.
사안이 사회적·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 또 장기적으로 지속될 그 파급력 측면에서다.
"소비자단체 등이 의견과 '근거'를 공식적으로 제시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희망을 담은 수치'일뿐이지, 그 어떤 단체에도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구변화와 의료수요 전망에 근거한 객관적인 의료인력 추계 데이터는 현재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의대증원을 주장하는 정부조차, 단 한번도 그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과 의료계를 설득할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의대증원의 과제를 떠안게 된 정부는, 불행하게도 의대증원 문제를 사회적 희망조사로 전락시켜버리는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나아가 그런 희망조사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전문가단체에 "왜 너희만 못내느냐"고 윽박지른다.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는데 의사와 합의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이라던 지난 연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발언에도 이의가 있다.
의대증원을 포함한 정책 결정의 권한이 정부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가진 당연한 권한이 아니라, 정부가 그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책임감 있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신뢰에 근거해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다. 지금의 이런 행태라면, 정부가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을까.
'의사 1명을 키우는데 수 억원의 직간접적인 교육비용이 든다. 의사 수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의료 수요를 창출한다. 의대증원은 지금으로서는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때문에 한 나라의 의사 수는 미래 인구변화와 의료수요,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를 모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모른체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를 정말 모른다고 한다면 공직에 있을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