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필수의료 패키지 뜯어보기②] 혼합진료 금지
의료계 "도수치료 등 환자도 원해서 이뤄지는 것" 우려
보건복지부, 비급여 관리 일환의 '핀셋형' 정책 해명
정부가 지난 1일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패키지' 정책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추진 등 4가지를 공개했다. 의료 개혁을 앞세우며 정책 실행 의지를 보였다. 혼합진료 금지, 개원면허제 같은 민감한 의료현안도 들어있다. 패키지 발표와 동시에 세부 안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의협신문]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등장한 주요 의료현안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의료 남용을 부추기고 시장을 교란하며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비급여와 실손보험 제도를 개혁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연 민생토론회에서 비급여와 실손보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대통령의 시선을 반영해 비급여 관리책으로 '혼합진료 금지'를 꺼냈다. 다만 중증이 아니면서 비급여를 과잉으로 하고 있다는 지목을 받고 있는 특정 진료행위에 한해서만 혼합진료를 금지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모두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비급여 항목이다.
혼합진료는 말 그대로 한 명의 환자에게 급여와 비급여 의료 행위를 모두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비급여인 도수치료를 하면서 급여가 되는 물리치료를 병행하는 식이다. 정부는 현재 '비중증 과잉 비급여'에 한해서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핀셋'형 혼합진료 금지인 셈.
정부의 뜻대로 혼합진료를 금지하면 의료기관은 도수치료나 백내장 수술을 할 때 급여든 비급여든 하나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실손보험료 청구가 불가능해진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발생하지 않은 비급여 비용은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다초점렌즈 삽입술을 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금액이 2021년 기준 1600억원 정도였다. 도수치료를 할 때도 함께 실시되는 재진진찰료, 물리치료비가 591억원 정도 나갔다"라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산업'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실손보험사만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혼합진료 금지는 보험업계에서 주장해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이 발표된 지난 1일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실손보험사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한화손해보험은 하루 만에 17.43%나 올랐다. 보험사의 실적 발표, 본인부담상한액을 넘어선 금액은 실손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의 호재가 있긴 했지만 정부의 발표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비급여 관리책으로 내놓은 정책은 혼합진료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캐나다 등의 예를 들며 의료적 필요성이 낮고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일부 미용 의료 시술의 별도 자격제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실상 무자격자의 문신, 레이저 사용 등을 허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의료계는 "시장 자유의 침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현재 급여 진료 인프라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의료기관들이 비급여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혼합진료를 금지하면 비급여 진료가 현실적으로 급감할 수밖에 없고 이는 환자의 불편 증가와 의료기관의 경영 악화로 이어져 1, 2차 의료 인프라 붕괴를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 의사단체 보험이사도 "사실 환자들도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으니 도수치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길이 막힌다면 굳이 도수치료를 수차례 받을 이유가 사라지게 되고 이는 의료기관의 수입 저하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의사가 비급여를 환자에게 강매하는 게 아니라 환자도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급여는 건강보험법에 나와 있는 것으로 관련 의료행위는 의료법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한할 수 없다. 이를 제한하려고 하면 쉽지는 않은 일"이라며 "행정기관은 법에서 허용한 범위 안에서 제도를 만드는 게 역할이다. 법을 초월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도 반갑지 않은 기색이다. 한 환자는 "지금 당장은 도수치료, 하지정맥류 같은 문제성이 있는 부분에만 혼합진료 금지를 도입할 것이라고 하지만 보험사에서 조금의 손해도 보기 싫어 그 항목은 확대되지 않을까"라며 "누구 좋으라고 만든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혼합진료 금지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거세지자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박 차관은 "전면적으로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지나치게 의료적 관점에서 적절성을 넘어서는 지나친 비급여 행위들이 있다. 비중증 과잉 의료가 되는 것들을 선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수치료도 그 자체만으로 과잉진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찰료를 내고 물리치료를 받고 도수치료를 받는다. 하루에 두 번 받는 환자도 있다"라며 "이건 의료적으로 필요성을 넘어섰다고 본다. 선별적으로 상세하게 기준을 정해서 비급여 관리를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