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과학적·합리적이지 않다" 99%
문제점 '보험재정 고갈·이공계 인재 유출·필수의료 붕괴' 꼽아
국립의대 교수 1000명 확충 "불가능" 96%…"교육 질 저하" 95%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은 의과대학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정책 강행 시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공계 인재 유출·필수의료 분야 붕괴·의대 졸업생 해외 유출 등의 부작용도 우려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 9∼10일 서울대학교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국립의대 교수 증원·향후 대응 방안 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11일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에는 전체 교수 1475명 중 78%(1146명)가 참여했다.
'현 상황이 장시간 지속되면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교수들이 일정 행동을 취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87%가 '예'라고 답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 비대위는 11일 긴급 모임을 열어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정부가 18일까지 적극적으로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키로 의결했다
국민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 타협 방안으로는 ▲전면 재검토 선언 후 객관적·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논의(66%) ▲적절한 선에서 정원 증원 합의(28%)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포함되는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합의 반대(4%) 등을 손꼽았다.
필수의료 회생 방안 -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의료분쟁 민형사상 부담 감소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의료전달체계 재정립
필수의료를 살리는데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으로 ▲필수의료 분야 수가 정상화(97%) ▲의료사고·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 부담 감소를 위한 법적 안전 장치 마련(75%) ▲의료전달체계 재정립(69%) 등을 꼽았다. 뒤를 이어 △(가칭)공공의대'를 설립하여 특정기간 특정지역에서만 의료행위를 하도록 제한을 받는 의사 양성(12%) △ 의과대학 정원 증원(6%) 등을 제안했다.
정부가 논문 3편(홍윤철 서울의대 교수·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근거로 연 2000명 증원안을 결정한 것이 과학적·합리적이냐는 질문에 99%가 '아니요'라고 응답했다.
정부가 각 대학 총장 및 본부로부터 의대 정원 증원 신청을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2025년도에 당장 늘릴 수 있는 규모가 2000명을 월등히 상회한다고 발표한데 대해 적절한 근거에 기초(evidence-based)했냐는 질문에도 99%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의대 학생 교육을 위해 기간 안에 국립대 의대 교수 1000명을 확충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96%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정부안대로 의대 정원을 증원했을 때 교육 여건에 어떤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임상의학 실습 기회 감소(93%) ▲기초의학 실습 기자재 등 부족(93%) ▲도서관·기숙사·강의실 등 시설 및 공간 부족(86%) 등을 지적했다. 교육 여건이 충분할 것이라는 응답은 3%에 불과했다.
정부안대로 의대 정원을 증원했을 때, 교육의 질이 현재와 비교해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냐는 질문에는 95%가 '질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될'이라고 답했으며, 현재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5%에 그쳤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필수의료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으며, '현 상황과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38%), '필수의료 분야에 오히려 해악을 끼질 것'(51%) 등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정책 강행 시 문제점 - 건강보험 재정 고갈·이공계 인재 유출·필수의료 붕괴
의대 교수의 86%는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가져올 문제점으로 '건강보험재정 고갈 가속화'를 우려했다. 아울러 이공계 인재 유출(74%) ▲필수의료 분야의 붕괴(73%) ▲의대 졸업생 해외 유출(42%) 등을 문제점으로 짚었다.
현재 건강보험은 7%가 넘는 보험료율에도 국고 지원을 빼면 만성 적자이며, 2028년 25조원 규모의 적립금이 모두 고갈되고, 2032년에는 적자만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 2000명 의대정원 증원 시 건강보험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증원된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기 전에도, 이미 의료시장에 진출해 있는 의사들 사이에 경쟁이 생겨, 현재 예상보다 더 빠르게 건보 재정이 고갈되거나, 더 큰 국고 지원이 필요할 것'(68%), '증원된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기 까지는 현재 예상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지만, 그 이후부터 건보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29%) 등으로 답했다.
교수들은 현재 건강보험 재정 상황과 의대정원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결과로 건보 재정이 빠르게 고갈 시 향후 대한민국 의료체계 변화와 관련, 미국과 같은 의료체계(42%), 영국과 같은 의료체계(30%), 현재 의료체계를 세금으로 유지(22%) 등으로 전망했다.
최근 서울대 총장과 대학본부가 50명 정원의 '(가칭)의과학과'를 신설하고, 기존 '의예과-의학과'에서 15명을 증원, 학년당 총 65명 증원안(135→200명)을 신청한 것과 관련, '의과학과'가 졸업생들이 의사면허 취득 시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하냐?는 질문에 '졸업생 중 상당수는 환자를 진료하는 분야로 편입'(83%)을 꼽았다. 당초 대학본부가 내세운 의과학자 양성 의도와는 달리 임상 의사를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밖에 '의과학 분야에서 더 큰 기회가 있는 미국 등의 해외 선진국으로 이민'(9%), '의과학과 졸업생들은 환자 진료가 아닌 기초의학을 포함한 첨단바이오 혹은 디지털헬스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 것'(4%) 등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