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이식 20년'…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선 까닭

'소장이식 20년'…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선 까닭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4.04.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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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국내 첫 소장이식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성황
이명덕 명예교수 "환자가 주사 끊고 밥 먹고 살 붙을 때까지 함께 마음 졸였다"
장기이식 중 최고난도…가톨릭 다장기이식팀 다학제협진·예후도 세계적 수준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22일 병원 대강당에서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어 소장이식 20년을 돌아보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22일 병원 대강당에서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어 소장이식 20년을 돌아보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의 이치였을까. 

국내 소장이식의 효시이자 역사인 이명덕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미쳐서 보낸 시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는 22일 병원 대강당에서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어 소장이식 20년을 돌아보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국내 첫 소장이식 환자를 비롯,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이식 환자들이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2004년 4월 28일. 국내 언론은 짧은 창자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중년 여성이 소장이식 후 입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뉴스로 전했다. 국내 첫 소장이식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소장이식은 4월 9일 이뤄졌지만, 20여일간 환자의 장 운동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살핀 후 수술 성공을 알렸다.

소장은 다른 장기에 비해 거부반응이 심하고 감염이 쉬워 이식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소장이식을 처음 시작 할 때만 해도 의료 선진국에서도 성공하는 사례가 많지 않아 수술 때 마다 걱정이 많았다. 단순히 넣고 이어줬다고 해서 이식이 끝난게 아니라, 환자가 주사 끊고 밥 먹고 살 붙는걸 봐야 성공이라 할 수 있어서 수술이 끝나도 환자들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날까지 하루하루 마음을 같이 졸였다"라면서 "장기이식과 관련된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탠 결과다.난이도가 높은 수술에 늘 긴장했지만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어려운 과정을 잘 극복해 나가고 건강하게 생활하게 돼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여러 질환을 이유로 소장을 대량 절제한 단장증후군 환자는 장이 짧아져 식사만으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 태아 때 생기기도 하지만, 환자 대부분은 후천성이다. 질병이나, 수술, 외상 때문에 소장을 많이 잘라내거나, 장이 짧지 않더라도 가성장폐색 등 장 질환이 증가하면서 최근들어 후천성 단장증후군이 늘고 있다. 

단장증후군은 장의 길이에 따라, 흡수정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영양주사를 맞으며 지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다. 또 영양수액을 지속적으로 투여받으면 정맥영양공급으로 인한 간부전, 영양수액을 투여하기 위한 중심정맥관의 감염, 혈관의 혈전으로 인한 소실 등 다양한 합병증 때문에 영양수액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경정맥영양공급 없이 식사로만 생명유지를 위해 소장이식이 필요하지만 첫 소장이식 수술 당시에는 제반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국내에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장기이식 관련 법률에도 소장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불법 논란까지 빚어졌다. 

게다가 단장증후군 환자를 찾기 어려웠다.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황정기 가톨릭 다장기이식팀장,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이명덕 가톨릭대 명예교수.
왼쪽부터 황정기 가톨릭 다장기이식팀장,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이명덕 가톨릭대 명예교수.

이명덕 명예교수는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니 국내에는 단장증후군 환자가 없었다. 케어가 안돼 대부분 사망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2000년까지 영양 관련 학회를 만들고 알리면서 소장이식 환자 풀이 생겨나고 환자 윤곽이 잡혔다. 미련한 접근이었다"라면서 "외과 중에서도 소아외과를 전공하는 의사는 드물고, 이식하는 의사는 더 찾을 수 없다. 소장이식은 고난의 길이다. 소아외과 진료를 하면서 어렵고 불쌍한 아이들을 회복시키자는 마음에서 소장이식을 시작했다. 오늘 소장이식 환자들과 다시 만나면서 감격했다. 눈물 없이 얘기할 수 없는 사연이 즐비하다. 그 분들이 제 보람"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세계적으로도 소장이식은 장기이식 중에서도 최고난도 수술이다. 

소장은 1억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있는 복잡한 기관이며, 몸 속 큰 면역기관으로 다른 장기보다 높은 면역항원성을 지닌다. 다른 장기에 비해 면역거부반응이 강해 면역억제제를 더 강하게 써야하기 때문에 이식받은 환자의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게다가 이식된 소장은 대변이라는 오염원에 노출되기 때문에 감염 위험성이 이식 장기 중 가장 높다.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감염으로 패혈증까지 진행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소장이식은 총 27례가 이뤄졌다. 그 중 20례가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시행됐으며, 서울성모병원이 18례를 성공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이 가운데 17례를 집도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소장이식 수술은 같은 전형이 없다. 케이스마다 수술이 다르고, 디자인도 달라진다. 핸디캡이기도 하지만 외과의사로서는 도전하는 의미가 있다. 소장이식을 할 때마다 새롭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장이식은 국내 대학병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가톨릭의료원 산하병원에서만 이뤄지는 상황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다장기이식팀을 구성해 여러 임상과 전문의가 다학제로 참여하고 있다. 

가톨릭 다장기이식팀은 황정기 팀장(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을 비롯 김미형 교수(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서울성모병원 정재희 교수(소아외과)·최호중 교수(간담췌이식외과)·박재명 교수(소화기내과)·김상일 교수(이식감염내과)·오은지 교수(이식면역진단의학과)·정찬권 교수(병리과) 등 30여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됐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가톨릭 다장기이식팀 같은 다학제진료의 관건은 서전 코디네이터가 의료진 풀을 관리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수술팀을 구성하고 운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다학제 협진의 팀워크를 다질 수 있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그동안 다른 전문과, 산하 병원 교수들의 도움이 컸다. 모든 교수가 직접 서울성모병원으로 와서 수술에 참여했다. 그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소장이식 예후도 세계적 수준이다.

이명덕 명예교수 뒤를 이어 위장관재활과 소장이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정재희 교수(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는 "지난 20년간 총 18명의 장부전환자들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소장이식을 받았으며, 올해 4월 기준 1년 생존율 78%, 5년 생존율 72%, 10년 생존율 65%로 외국의 1년(86.4%), 5년(61.2%) 성적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첫 소장이식 환자(왼쪽)와 이명덕 명예교수.
국내 첫 소장이식 환자(왼쪽)와 이명덕 명예교수.

이명덕 명예교수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모든 장기이식이 가능한 병원으로 갈무리됐다.

황정기 가톨릭 다장기이식팀장은 "소장이식은 수술적인 것도 면역학적으로도 제일 고난도다. 소장이식을 할 수 있으면 다른 고형장기이식까지 그 수준을 인정받는다. 이명덕 교수님께서 서울성모병원에 소장이식을 세팅하시면서 모든 이식이 가능한 병원이 됐다"라면서 "복부 장기이식 중 간 이식도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소장이식이 중심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장이식은 복합이식이라는 데 있다. 소장을 중심으로 거기에 간이 같이 갈 수도 있고 위를 같이 이식할 수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성모병원은 2014년 가장 어려운 케이스인 변형 다장기 이식을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가톨릭의료원은 소장이식 분야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가톨릭의료원에서는 다장기를 포함한 고형장기 이식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소장이식은 병원마다 건수를 확보할 정도로 대기자나 여건이나 부족하다. 우리의 장점은 의료원 산하 여러 병원에서 이식에 관여하는 선생님들의 협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라면서 "각 병원에서 관심을 갖고 모여서 공부하고 준비하는 의료진의 열정을 바탕으로 의료원이나 병원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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