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존 전공의, 서울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전공의 입장 전달
"전향적 태도 안 보이면 협의에 나설 의미가 없다" 단호
선배의사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침묵하지만 말아달라"
지난 2월 20일 전후로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 이들의 공백이 4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이들이 바라는 미래는 뭘까.
한성존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는 30일 열린 서울시의사회 온라인 학술대회에서 전공의들이 바라는 목표로 'Safety(안전), Prevention(예방), Confedence(확신), Pride(자긍심)' 등 4개의 영어 단어를 제시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끝날 때 목표하는 것은 우선 전공의와 학생들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의대증원 같은 의료현안을 정치적 이슈로 소모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하고 동료와 후배들이 진료과를 선택할 때 다른 요인으로 망설이지 않고 본인의 희망과 적성만 고려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도 더했다.
한성존 전공의는 성형외과 전공의로서 4년차 진급을 앞두고 있는 고년차 전공의였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썼고,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서를 가장 먼저 받아든 전공의 중 한 명이다.
그에 따르면,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1만여명의 전공의들은 대리운전, 택배 상하차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미뤄뒀던 건강관리 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들만의 네크워크로 심포지엄 등을 하며 소통도 하고 있었다.
그는 전공의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초, 의대정원 2000명 확대를 일방적으로 발표, 전공의와 대한의사협회 임원 등에 각종 행정명령과 고발 등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전공의는 "정부는 지속적으로 강경 대응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고 2000명 증원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한다"라며 "2020년 의정합의문과 달리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강행하고 있고 코로나19 당시 전면에 나섰던 공공병원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나 정부 기관과 신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전공의들은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협의에 나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월 20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7대 요구안을 제시한 후 정부와의 대화에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
전공의 7대 요구안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후 증·감원 함께 논의 ▲수련 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구체적인 대책 제시 ▲주 80시간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부당한 (행정)명령 전면 철회 및 전공의에 사과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이 중에서도 전공의들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 백지화 항목과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가장 중요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공의는 "함께 근무하고 있는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7대 요구안 중 중요도를 물었는데 오히려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은 후순위에 위치하고 있다"라며 "전공의들은 수가 청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가를 올려달라는 언급은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 등을 지켜보면서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다른 필수의료도 마찬가지"라며 "의료진에 대한 보호가 없으니 젊은 의사들은 본인을 보호할 수 없는 의료환경이 본인의 몸을 내맡기기 무서워하고 있다"며 현실을 짚었다.
집단휴진, 재정 지원 등의 형태로 후배 조력에 힘쓰고 있는 선배들을 향해서는 "옆에만 서 있어 달라"고 했다.
한성존 전공의는 "선배의사가 전공의와 크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에 지식인으로서 어떤 것을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리를 지켜주기보다는 함께 싸워주는 게 더 필요하다"라며 "싸움의 방식이라는 게 집단휴진일 수도 있고 지원, 많은 관심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침묵하지만 말아달라"고 진심을 전했다.
이대로 전공의가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의대생이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을 때 당장 내년부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부가 고민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 적용되고, 의대생이 미복귀하면 당장 내년 1학년만 7000명이 훌쩍 넘는다. 국시를 치는 의대생도 없어 새롭게 배출되는 의사도 없어지고 전문의 배출도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전공의는 "전공의 및 의대생 공백에 따른 대책을 정부가 (의대정원) 정책을 추진할 때 준비해 놨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우리가 먼저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상황을 걱정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예과 1학년 후배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있다면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공의들은) 1년 뒤 돌아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에 임하고 있다"라며 "이 사태의 단순한 해결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잘 해결되길 바라는 것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