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범석 아산병원 교수 "근육 녹고 이도 빠져…커피·링거로 환자 피해만은 없게"
"몸은 아파도 마음은 편하다"…"논쟁이 기본인 교수로서 현 사태 황망, 미안할 뿐"
정부의 의대정원 정책 강행에 대한 항의와 환자·전공의에 대한 미안함으로 12일째 단식을 이어오고 있는 교수의 소식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의 고범석 교수다.
4일 서울아산병원을 찾았을 때, 듬직한 풍채를 자랑하던 그는 급격히 마른 모습이었다. 몸에 꼭 맞았던 의사 가운이 헐렁해졌다. 볼과 눈 밑이 푹 꺼지고 푸석푸석했다. 지난 23일부터 물과 소금, 커피 외에는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고범석 교수와의 일문일답.
Q. 현재 몸 상태는 좀 어떤가?
누워있을 땐 그래도 견딜만한데, 계속 피곤하고 잠이 밀려온다. 그렇게 자다가 배고파서 깨기도 한다. 앉아서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인데 (단식이) 결코 쉽지 않다. 커피를 마셔 잠을 쫓기도 한다.
온몸이 아픈데, 근육이 분해되고 있는 것 같다. 또 어금니가 빠지려는지 심하게 흔들린다. 오후에 치과 진료를 예약했다.
그런데 단식 이후 몸은 괴롭더라도, 신기하게도 사태 이후 내내 괴로웠던 마음은 굉장히 편하다.
Q. 열흘이 지나서야 단식이 언론에 알려졌다. 조용한 단식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환자와 전공의들, 그리고 병원 식구들의 어려움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전공의와 병원 직원들이 교수를 향한 원망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저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고통을 함께하고 싶어 단식을 택했다.
교육 파탄이 자명한 대규모 증원부터 의료사태까지,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 마음아프고 화도 나는데 할 수 있는게 없어 괴로웠다. 그러던 중 '의사는 스스로의 몸을 아껴가며 시위한다'는 비난을 접했는데 뇌리에 꽂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가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으로, 단식이라는 작은 저항을 하기로 했다.
보통 단식은 텐트를 치고 하던데, 환자 진료도 보고 수술도 해야 해서 병원에서 멀리 갈 수는 없었다. 병원 로비에서 천막을 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혼자 단식을 하게 됐고, 그렇기에 굳이 여기저기 알리기에는 멋쩍었다.
최창민 교수(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가 언론과 인터뷰 중 지나가듯 내 얘기를 했는데, 해당 언론에서 관심을 보여 알려지게 됐다.
Q. 단식이 알려지고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단식에 함께하겠다는 교수도 있는지?
단식을 굳이 알리고 다니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단식이 알려진 이후로는 괜히 몸 축내지 말고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많다.
여기저기서 단식에 본인도 동참하겠다는 연락도 많이 왔다. 그저 나(고범석 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본인 의지로 하시라고 답했다.
아산병원에는 단식을 하지 않더라도 사직하는 교수들이 많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 교수들의 조용한 사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Q. 12일째 단식, 그만둘뻔했던 위기는 없었나?
솔직히는 밤에 당직을 서고, 옛날에 교수실에 사다 둔 새우깡으로 눈길이 간 적이 있다. '이 과자 하나로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환자들과 전공의들은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심정일 텐데'하고 생각하니 식욕이 가셨다.
Q. 단식을 하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환자들이다. 특히 단식한다는 게 알려지면 내게 진료받을 예정인 환자들이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스스로 (몸상태를) 생각하기에, 아프긴 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며 잘못된 판단을 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수액이라도 맞고, 몸이 아플지언정 환자에게 피해가는 일은 없게 할 것이다. 애초에 진료재조정과 단식 모두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취지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추후 단식 종료 시기도 이런 부분에서 고민 중이다. 어쨌든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려 한다.
Q.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개인 소신을 밝히자면
진료를 보고 논문을 쓰고 학회활동을 하는 교수로서는 근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00명 증원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강행되는 상황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보건복지부도 공무원과 정부로서 양심과 의지가 있다면 정말 (증원정책 강행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쓰거나 수술을 해야할 때, 당연히 환자에게 이 처치가 좋다는 근거도 안 좋다는 근거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 양쪽의 근거를 모두 종합해서 의학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유방외과 의료진끼리 유방보존술을 받은 환자들의 압박스타킹 착용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는 환자의 약간의 불편함, 그리고 몇만원의 비용까지 고려해 근거를 찾아가며 논쟁하는 게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국가의 의료정책이 양쪽의 근거를 찾고 논쟁하는 일련의 과정없이 2000명으로 결정돼 강행되니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견딜 수가 없다.
Q. 단식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나 한명이 단식을 한다고 정부가 꿈쩍이나 하겠는가. 지금 정부를 보면 설령 아산병원이 사라져도, 환자와 의사가 죽어 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책을 강행할 것 같다. 이번 사태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는 나중에 많이 후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서 단식하다가 이가 빠진다면, 세상 멍청한 이가 되지 않겠나.
바위에 계란을 부딪치든 아무 소용 없다고 할지라도, 한명쯤은 그들(환자와 전공의)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아파해 이런 식으로(단식하며) 함께하려 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한 명쯤에게는 이런 진심이 전해질 수 있으면 한다.
한편 이날 오후 고범석 교수는 결국 흔들리던 어금니를 발치했다고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