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사간원 관리에게는 근무 중 낮술이 허용됐다. 사헌부·홍문관과 함께 언관 '3사'로 불렸던 사간원의 업무는 주로 '간쟁(諫爭)'과 '논박(論駁)'이다. 왕이 잘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 고치도록 싸울 듯이 말하는 것이 간쟁이다. 왕의 잘못된 주장을 조리있게 공격하는 것은 논박이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보장된 간쟁과 논박이라지만 왕과 맞서는 일은 누구든 피하고 싶은 일. 간쟁과 논박을 하다 목이 달아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왕을 들이박아야 하는 날이라면 술의 힘이라도 빌리라는 나름의 고충해결 방안이었다.
낮술을 걸치고 왕에게 세 번 대들었지만 끝내 왕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면 관직에서 그 즉시 물러났다. 삼간불청즉거(三諫不聽則去). 세 번 간해도 듣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관직에서 물러난다는 원칙이다. 한 개인, 심지어 그 개인이 왕이라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한 조선식 집단지도체제의 일면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7년 5월 장관직을 전격 사임했다. 국민연금법 개정을 추진하다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된데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졌다. 개정안 부결로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넘기게 됐으니 야당을 설득하지 못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 실세 장관으로 불렸지만 불과 1년여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전국민 기초연금 지급 공약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이견이 불거지며 전격 사퇴했다. '소득 인정액을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을 청와대가 수용하지 않자 대통령의 만류에도 임명 6개월만에 장관직을 던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이른바 '소년등과'다. 한국 관료사회에서 서울대와 소년등과는 곧 출세가도에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을 증명하듯 조 장관은 노른자 부서인 기획재정부 공무원에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행정관까지 꽃길을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과 보건복지부 차관을 맡으며 꽃길은 이어졌다. 관료들은 차관을 관료로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끝자리라고 말한다. 차관을 넘어 장관이 되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욕심을 낸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운을 비롯해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초대 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대통령의 '40년 지기' 정호영 후보는 '아빠 찬스' 논란으로 낙마했다. 이어 지명된 김승희 장관 후보도 지명 39일만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자진사퇴했다.
연이은 장관 지명자의 낙마에 대통령실은 비상이 걸렸다. 130일 이상 차기 장관 후보를 지명하지 못한 채 허둥댔다. 세번째는 반드시 낙마하지 않을 후보를 골라야 했다. 튀지 않고 말잘듣는 무색무취 관료 카드가 선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정가에 돌았다.
꽃길은 그렇게 또 열렸다.
조규홍 장관은 의대 정원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 눈에 띄지 않는 장관이었다. 기재부 출신 장관이 보건복지 분야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임기 시작 전부터 들리던 터였다.
조 장관이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26일 국회 청문회.
이날 조규홍 장관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안이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었다며 용산 대통령실의 개입설을 반박했다. 용산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장관이라는 자가 끽소리 한 번 못하고 받았다는 세간의 비아냥을 애써 부인했지만 국민은 믿지 않았다.
답변 직후 이뤄진 설문에서 국민의 60%가 장관의 말이 "거짓말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7월 8~9일 1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결과(신뢰도 95%, 표본오차 ±3.1%p)다.
전직 장관들이 그렇듯 조규홍 장관도 퇴임 후 한 해 수억을 받는 유수 로펌의 자문위원이 되거나 대학 교수 보직을 얻어 여전히 꽃길을 걸을 것이다.
그의 꽃길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고민이나 환자의 고통과 닿아 있지 않다. 수만 명의 의사와 의대생의 좌절과도 닿아 있지 않다.
그저 개인 조규홍만의 복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