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대 1’ 경쟁 뚫고 의협 젊은의사 의료정책 공모전 대상 수상
한영빈 의대생 "전혀 예상 못했던 수상…응급의료는 줄곧 눈에 밟혔다"
"경제·통계 전공이 큰 도움, 책상물림 정책보다는 현장에서 고민하고파"
당장 제안서로 내도 손색이 없다. 창의적 제안에다가 예상 기대효과를 논리적으로 기술했다.
여러 응급의학과 교수나 학회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주최 젊은의사 의료정책 공모전에서 대상에 선정된 수상작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 시스템'의 심사평이다. 414개의 출품작 중 유일무이한 대상의 주인공은 건국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 본과 4학년인 한영빈 학생이다.
그의 제안은 응급실 전단계(Pre-ER)에서 경증환자를 진단·처치하고 필요시 응급실로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여기에 유휴 의사인력의 파트타임을 활용해 지역·응급의료 공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Pre-ER 스크리닝 이용료는 응급실 이용료보다 낮게 설정함으로써 경증환자는 Pre-ER 스크리닝이, 중증환자는 응급실 직행이 이득이 되도록 설계했다.
[의협신문]은 9일 한영빈 학생을 만나 아이디어를 구축한 과정과, 의료정책에 있어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물어봤다.
다음은 한영빈 학생과의 일문일답.
- 414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상에 당선돼셨다. 출품작 퀄리티가 상당한데, 수상을 예감하진 않았나?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휴학한 의대생은 물론 직접 의료현장에 있었던 사직 전공의들도 많으니 그만큼 훌륭한 의료정책들이 제안되지 않겠나. 장려상이나 아차상이라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다른 수상작들을 보면서 훌륭한 아이디어가 많아 놀랐다. 수상에 큰 기대가 없어 수상자 발표 당일에도 잊고 있다가 수상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상당한 고찰이 느껴진다. 응급의료에 관심을 갖고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있는가?
의대에 입학하기 전 부모님의 보호자로 응급실에 여러 번 갔다. 응급실에 갈 때마다 느낀 건 대기가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의료에 대해 잘 모르던 당시에는 막연히 응급실에 인력이 부족한가보다 생각했다. 의대에 입학한 후에야 응급실이 경증환자 과밀화 문제를 겪고 있음을 알았다. 본과 4학년에 들어서는 응급실 실습을 돌며 현장을 직접 보게 됐다. 응급실이 아닌 다른 곳 실습을 하러 가면서도 늘 응급실이 눈에 밟혔고 긴 대기를 해야 하는 환자들 생각이 났다.
자연스레 평소에도 응급의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 아이디어는 본과 3학년 때부터 그리고 있었고, 이번 공모전에서 평소 해온 생각들을 풀어나가는 데 집중했다.
- 출품한 정책제안을 살펴보면 경제적 비용의 구체적 모델과 추계부터, 건강보험재정은 물론 환자와 병원의 경제적 이득까지 두루 분석한 게 인상적이다.
공모전에서 경제성과 현실성을 함께 평가한다고 해서 운영비용과 재원충당, 보수체계에 좀 더 방점을 뒀다.
의대에 입학하기 전에는 경제학과 통계학을 전공했고, 제도적 변화가 각 경제 주체에 미치는 정량적·정성적 영향을 살피는 법을 배웠다. 정책의 효과를 여러 방면에서 예상해보는 데 도움이 됐다. 또 스스로의 생각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데 집중해보라고 지도교수님이 조언해 주신 덕을 본 것 같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는 고령화사회 노인인구와 경력단절 여성 등 인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유휴 의사인력을 응급의료 공백에 활용하는 방안에 착안할 수 있었다.
-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에 의대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실제로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본인도 직접 참가할 의향이 있나?
의대생이 대면진료 보조로서 Pre-ER 스크리닝에 참여한다면 네트워크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여 의대생에게 봉사시간이나 보수가 주어진다면 나는 물론 많은 의대생 역시 참여 의사가 충분할 것이다.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이 필요한 의대생들에게 있어,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응급의료 시스템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만족감은 어떤 보상보다 크게 다가올 것이다.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의대생들이 응급의료에 관심을 갖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에 추가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가 확립되면 경증환자는 Pre-ER 스크리닝부터 이용하고 중증환자는 응급실로 직행하는 비용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다만 현 시스템하에서 일부 환자는 경증으로 응급실을 이용해도 실손보험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다.
비용을 통한 유인이 어렵기에, Pre-ER 스크리닝 실현을 위해서는 해당 경우에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시범사업을 통해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의사의 만족도와 운영비용 추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이를 분석해 네트워크 참여 의사의 적정 보수율을 찾아야 한다.
-의료정책 관련한 일을 해볼 생각은 없는가?
사실 의대 입학 전에는 보건의료정책 쪽으로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나 책상 위에만 앉아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현장 속에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대에 왔다.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데이터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할 생각이다. 응급의료체계를 연구하는 분들과도 아이디어 구체화에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젊은 예비 의사로서 의료정책과 관련해 정부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린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선택에 변화가 모여 이뤄진다. 즉 정책은 개인의 선택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학을 공부할 때부터 한국의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단순한 금전적 인센티브보다는 사회적·문화적 개선을 통해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젊은 의사의 의료환경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보조금 정책을 지양하고 젊은 의사들이 바이탈 의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젊은 의사들에게는 금전적 보상 못지않게 명예, 자부심, 환자와 유대에서 오는 만족감, 워라밸 등 비금전적 보상이 중요하다.
또 임상 현장을 경험해 본 의사를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많이 참여시켜 줬으면 한다.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선택을 바꿀 정도로 정책의 미세한 부분까지 다루려면, 진료 현장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어봤고 현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경험한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