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건 교수 "비용 많이 쓰고 환자 못 살리면 돈 못주겠다는 것" 가치기반 비판
의료이용 바뀌지 않는 데 공급자만 옥죄…환자·공급자 논의없는 정책 부작용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 13일 '의료수가와 보상체계' 100분 토론
정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혁신하겠다는 것은 의료비를 많이 쓰면서 사람을 못 살리는 행위에는 안 주겠다는 것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지영건 차의과대학교 교수(예방의학교실)는 13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의료수가와 보상체계' 주제 100분 토론에서 "수가를 구성하는 상대가치(Resource-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원가 이하의 수가를)제대로 보상해 주지 못했으면서 정부는 가치기반 지불제도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돈을 더 못 주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치료의 결과보다 행위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행위별 수가제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지영건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만 봐라고 하면서 환자 쏠림 시 의료 공급자한테 패널티를 주고 알아서 해라는 얘기"라면서 "정부가 국민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하는 것은 안 하고, 전적으로 병원더러 오지 말라고 하는 정책이다. 환자가 오는데 어떻게 안 받나? 실효성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100분 토론 참가자들은 의료비 지출이 많은 고령인구 증가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 속에 2030년 GDP 대비 의료비가 16%까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의료수가 제도와 보상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
특히 OECD 2배가 넘는 의료 과소비와 수도권 환자 쏠림 등 무분별한 의료이용체계 문제를 비롯해 의료전달체계·인력 및 자원 관리체계·보상체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했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공급자와 의료소비자와의 대화·설명·조율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료개혁에 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상급종합병원 기능을 바꾸고, 필수의료와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의대 정원을 증원했을 때 의료소비자가 부담해야 될 건강보험료 상한선은 어디까지인지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공유 자원의 규모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조율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 좌장을 맡은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의학과)는 "정책을 현장에 적용했을 때 잘 작동할지, 바라지 않는 오작동이 생기지는 않는지 정부와 이용자와 공급자가 같이 논의하고 조율하는 작업을 항상 거쳐야 정책 실패가 없다"면서 "정부는 의료계를 의개특위에 초대했는데 안 왔다고 하지만 사실 원하는 사람만 초대했다. 의료계가 자신들의 대표를 내보낸 것도 아니고, 소비자도 자신들의 대표들을 뽑아 내보낸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수가 항목에도 없는 대기 시간과 설명에 관해 보상 기전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주민의 평생 건강을 보살펴 주는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에도 무게가 실렸다.
우병준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신경외과)는 "응급의료와 중증 의료 등 위급성이 있는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물적 자원이 대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유미화 대표는 "의료소비자로서의 바람은 상급병원에 안 가는 거다. 그냥 지역 동네의원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일차의료체계에 관한 보상과 수가를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에 의사들이 오래 남아 주민과 소통하면서 건강을 관리해줄 수 있는 그런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