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의사회·전의교협·전의비 연달아 성토 "추석에만 억지로 열면 국민 생명은?"
전국 57곳 대학병원 응급실 중 24.6% 분만 안 돼…영유아 내시경은 80.7% '불가'
오는 추석을 앞두고 응급의료에 적신호가 켜지자, 의료현장을 지탱해 온 의대 교수들과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한목소리로 정부가 응급실 붕괴를 외면한다고 성토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1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정부는 전국의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는데 현재의 위기를 부정하며 눈 가리기식 대책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일례로 "강원대병원 응급실이 2일부터 야간에 문을 닫기로 했는데도 추석 명절은 24시간 운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짚었다. 업무량이 급증한 와중 인력 충원 요구를 묵살한 탓에 소수의 전문의들이 도저히 정상적인 근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부의 눈가리기를 위해 명절 24시간 근무를 강제한다는 것이다.
해당 병원은 응급의학 교수들에게 업무명령을 내리면서, 응급실 진료 제한 시 '자격취소'와 '면허정지'까지 거론했다.
정부의 추석 당일 진료 강요가 대학병원 응급실을 넘어 병의원까지 미친다고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와 지자체 및 의료기관에 발송한 '연휴기간에 문 여는 병의원 지정' 관련 공문에 따르면 '자발적 참여를 하지 않은 의료기관 중 임의로 추석에 운영할 곳을 지정할 수 있고 불이행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응급의학 전문의들과 의대 교수들은 "현장조사와 고발을 하겠다며 억지로 응급실 문을 열어둔다고 환자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추석명절을 앞두고 응급의료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도 정부는 극구 부인하고, 문만 열고 있으면 정상이라며 국민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사력을 다해 버텨오던 응급의학 전문의와 배후에서 수술과 치료를 담당하던 필수과 전문의들이 한계를 넘어서고, 건강에 이상을 보이며 현장에서 쓰러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병원의 최종치료 능력 저하로 수용이 불가하게 된 응급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길에서 죽어가고 있다"며 "3차병원이 해야할 일을 떠맡은 2차병원들도 이제는 한계를 초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응급의학의사회와 전의교협은 "국민이 원하는 건 제대로 작동하는 의료체계다. 국민은 더 이상 비상진료체계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며 "비상진료체계는 전쟁이나 국가적 비상상황 등 정말 비상일 때만 사용하는 것이지 특정인의 고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2일 입장문을 내고 현장 응급의료 상황을 전했다.
전의비에 따르면 1일 기준 전국 57곳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이 14곳(24.6%), 흉부대동맥수술이 안 되는 곳이 16곳(28.1%)다. 영유아 장폐색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곳(42.1%),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은 46곳(80.7%)에 달한다.
전의비는 "건국대 충주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세종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강원대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응급실을 일부 닫았거다 닫으려는 계획이 있다"고 짚고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병원이 늘어날 텐데, 이게 비상진료체계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냐"고 꼬집었다.
전의비는 "지난 5개월간 한 번도 의료현장에 가보지 않았으면서 기자에게 의료현장에 가보라는,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응급실은 전문의 부족으로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응급의학의사회, 전의교협, 전의비는 정부를 향해 "의료사태를 초래한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하고, 의료정책 실패를 인정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라"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