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사과 의무화? 법체계상 불가"…위헌 선례도

"의료사고 사과 의무화? 법체계상 불가"…위헌 선례도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4.09.0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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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법과 대륙법 상이해…한국 도입은 무리수, 법적 이득도 글쎄"
사과법 있다는 호주, 영국, 미국…우리나라와 입법 취지 전혀 달라
"사과 강제는 양심의 자유 침해" 헌법재판소, 91년 이미 결정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으로 사과 의무화에 이어 지난 30일 '의료사고 소통 지원법'을 제시했으나, 법조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미법의 제도를, 대륙법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건 법체계 자체를 뜯어고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소통 지원법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의 경위 등 상세설명을 법제화하고, 이 과정에서 유감 또는 사과 표현이 의료소송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채택되는 데 제한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신이 되는 사과법은 1986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채택되고 현재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호주 등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영미권과 우리나라는 법체계, 의료체계, 의료소송 양상이 모두 상이하기에 이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미법vs대륙법, 너무 달라 도입 어렵다…실효성도 의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영미법은 증거 법칙이 발달해 특정 증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세세히 정했으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륙법 체계 국가들은 민사소송 절차에 따라 증거 제한이 없는 게 원칙이다. 형사 역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일반론적 원칙 정도"라고 설명했다. 

영미법 체계 국가들은 의료진의 사과를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지만,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특정 증거에 제한을 두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영미권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과가 단순한 유감(sorry)을 넘어 '책임의 통감'을 의미한다. 현재 의료소송에서 환자나 유족 측은 의료진이 사과나 사죄할 시 반드시 녹취 증거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 추세"라며 "만약 사과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오려면 의료진의 사과 시 배상액이나 형사처벌, 행정 불이익 등에서 이익을 주는 것이 법리에 맞다"고 덧붙였다.

■ '사과법' 시행하는 국가의 의료소송, 어떤가 봤더니?

호주·뉴질랜드를 거쳐 현재 영국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민규 변호사(법무법인 해창)는 사과법을 시행하는 국가들의 법체계와 의료소송 현황을 하나하나 짚었다.

우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아예 면책되기에, 애초에 사과법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했다. 심지어 수술 중 환자의 몸속에 가위를 넣고 봉합해 버렸다고 해도,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환자와 유족은 형사소송을 걸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모든 의사가 국가 NHS에 소속돼 공무원에 빗대기도 한다. 즉 의료사고 소송도 의료진 개인이 아니라 국가기관인 NHS에 화살이 돌아간다. 

이민규 변호사는 "감정을 의뢰받은 면허관리기구(GMC)가 의료진의 중과실이라 판단하면 의료진 개인에게 징계는 내려지겠지만, 우리나라 공무원 징계와 비슷한 정도"라며 "영국에서는 사과법의 유무가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고 짚었다.

이민규 변호사는 "실제로 사과법이 시행되는 국가에서 변호사로 일했을 때, 의료진은 유감 표명을 하는 정도이기에 환자나 유가족에게 큰 위로나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며 "(한국 정부가)한국법 실정에 맞지도 않는 사과법을 갖다가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사과 강제는 양심의 자유 위반' 위헌 선례…사과법 현실화 어려울 듯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과의 법제화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걸정(89헌마160)이 난 전례가 있다. 민법 764조 '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에 대한 판례다. 

해당 조항에서는 법원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손해배상과 더불어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가 포함돼 있었다. 동아일보가 이 처분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1991년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양심에 따라야 할 사과를 강제하는 것이 헌법 제19조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 과잉금지원칙(비례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에서다. 

이와 관련해 박호균 변호사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과, 양심에서 나온 사과를 증거자료로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우리나라 법체계에 맞지 않고 위헌판례도 있는 사과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평했다.

"사과법 도입 자체는 현실성이나 실효성이 있는 논의가 아니다. 사과법을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소화하려면 너무 많은 고민과 오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은 박호균 변호사는 "기존의 환자안전법 등을 통해 의료사고에 있어 환자-의사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입법을 고안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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