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코드 블루…심폐소생술 없이 방치

한국 의료 코드 블루…심폐소생술 없이 방치

  • 김기경 한림의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4.09.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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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경 한림의대 명예교수
김기경 한림의대 명예교수

한국의 의료에 코드 블루(Code blue)가 발령되었으나 심폐소생술 없이 방치되고 있다. 

건강하고 고상하게 자라던 한 그루의 난도 죽는 것은 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스러져가는 난을 다시 살리는 것은 보통의 지식이나 보살핌만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증상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며 더욱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지나 몽니에 의한 만용으로 잘 못된 처방으로 일관한다면 사람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잃고 자멸하게 될 것이다.  

의료붕괴라는 상황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사들의 업무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환자 '진료'가 있고 진료하는 의사의 양성을 위한 의대생과 전공의 '교육'이 있고 진료와 교육의 발전을 위한 의학의 '연구'가 있다. 

이 3가지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는 사람들이 의과대학과 수련병원, 의학 관련 학회, 연구기관 등의 의사이고 연구원들이다. 이제 한국의 의료에는 교육을 받을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희망을 잃고 자리를 떠났으며, 임상교수들은 진료만으로도 소진이 되었고 진료는 물론 교육과 연구 업무마저 불가능해 졌다. 

의료의 제도가 붕괴되고 의료의 연속성이 단절되었다. 단순한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환자와 보호자와 의사간의 신뢰하는 마음이다. 불신하면서 의사에 생명을 맡길 수 없듯이 최상의 결과만을 담보하도록 강요하는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바람직한 진료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너진 제도는 다시 살릴 수도 있겠으나 악마의 저주로 처참하게 찢기고 훼손된 의료의 가치와 의료인들의 헌신과 보람, 그리고 깊은 흉터로 남은 불신의 후유증은 어쩌면 영영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직접적으로는 국민을 사지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고 지극히 염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인과 행정 책임자들은 물론 이 사회의 지도자라면 이제라도 의료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심폐소생술을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의료를 살리고 바로 세워 가는데 무엇이든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과 의료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 어떻게 한국의 의료가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의료가 될 수 있었나? 

1) 한국의 의료는 국제적 학술활동과 교류를 통해 의학과 의술을 발전시켜왔을 뿐 아니라 국제기준을 능가하는 수준에 목표를 두고 추구해 왔다. 
2) 의학의 교육과 이의 관리 및 평가에 있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각 전문 과 학회와 평가기관, 그리고 의학회 등 관련 조직과 기구들이 힘께 노력하여 왔다.
3) 의사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인술이란 의료윤리와 숭고한 의료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진하고 헌신하여 왔다.  

2. 작금의 '의료개혁'이 진정한 개혁인가?

개혁이란 목적과 동기와 방법이 바르고 정의로워야 하며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1) 작금의 '의료개혁'에는 동기와 목적이 뚜렷하지 않고 그 방법은 더더욱 의문투성이다. 야심차게 밀어붙인 '의료개혁'은 왜곡되고 곪아온 한국의 의료현실에 대한 잘 못된 진단과 처방을 초래하였고 돌이키기 어려울 '의료사태'를 촉발시켰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 지 15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최악으로 유린되고 있는 작금의 법조계를 보면서 이것이 정원을 대폭 늘린 성공한 법조개혁의 결과로 생각하고 실패했던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제도를 또 다시 밀어 붙이려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 인명을 다루는 극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의료의 개혁에 전문 임상의료인은 없었고 그들의 의견조차도 철저히 배척되었다. 일부 정치권력과 정치관료, 그리고 정치적인 학자들만의 독단적 밀실 야합으로 졸속 추진되었다. 
 
3) 결과적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오던 한국의 의료가 '의료개혁' 이후 더욱 급속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해되고 있으며, 오랜 동안 굳게 지켜져 왔던 국민과 의료인 간, 존경과 사랑을 바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오던 의료인 간의 깊은 신뢰관계마저 궤멸되는 더 아프고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3. 다시 집어보아야 할 의료의 잠재적 문제들

1) 한국의 의료는 사회주의 독재 이상으로 정치에 의해 일방적인 강압으로 일관되어 왔다. 의료보험의 도입 초기에는 국가와 국민의 재정 상태가 극도로 어려웠고, 전쟁 후 국민들에 대한 의료가 절실하였던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강제되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국민과 기업들의 이해와 협조로 어렵게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와 복지가 요구되고 있는 이 시대에 원가도 안 되는 비용으로 최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폭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료는 전문지식의 가치나 진찰, 처치 수술, 약품과 주사, 의료행위, 의료품 등 수입을 벌충해줄 모든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원가 이하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강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직원 인건비, 건축비, 임대료, 각 종 보험료와 운영비, 그리고 소송비용 등까지 제비용은 온전히 의사가 감당하는 이율배반적인 희한한 제도로 운영이 되어온 것이다.  

 2) 극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의료분야의 행정 책임자나 관료들은 하나 같이 임상의료를 모르는 정치관료이고, 연구용역을 맡고 정보를 제공하는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가 환자를 진료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경제, 과학, 예술, 사회, 정치, 법률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현직에 풍부한 경험과 조예가 깊은 사람을 장관이나 최고 경영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의료분야만은 임상의사가 아닌 정치 관료나 학자만의 전유물이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평시에는 물론 막상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더더욱 바른 진단과 처방도 어렵고, 여기에 정치가 개입되면서는 의료의 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3)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는 의료에 투자하고 유관 직역 간에 업무 조정을 하는 정도로 하고 현장의 전문적인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들을 도와주면 될 것이다. 능력이 안 되는 비전문가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전문가들을 겁박하고 폭압으로 굴복시키려 한다면 범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3년 새만금 청소년잼버리 파행과 실패의 종합적인 원인 평가에서, 세계스카우트연맹은 "과도한 정부 개입 탓"이라면서 정부의 간섭과 무책임, 무능 탓이라고 하였다. 

4) 의술은 인술이라며 의료인의 헌신은 당연시 하면서 이들의 교육에 투자는 없었다. 공과계, 예술계, 체육계, 법학계 등 모든 분야마다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 장학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의대생의 국비 장학금 관련 회의에서 "의대 입학생 대부분이 고소득 가구 출신'이고 장래에 고수입자라는 것을 전제로 의대생 장학금까지 제한하였다는 보도를 보면서 행정관료와 관계자들의 의료나 의료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인식 수준도 알게 되었다.  
 
5)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떠들지만 엄연히 현존하는 지역의 의료기관과 지역 의료인 양성 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외면하고 있다. 지방의 도, 시, 군에도 대학병원이나 중소병원, 의원 등이 있고 막대한 국가의 지원으로 초현대식 건물과 장비, 많은 일반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의료원과 보건소들이 있으며, 지방의 공공 보건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공중보건장학제도도 운영 중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운영실태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하여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또한, '공공의대법‧필수의료육성법'이 아직 확정되기도 전부터 학생선발과 관련하여 '시·도지사 추천'이니 '전문가·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한 것을 보면서 자꾸 작금의 '의료개혁'도 전형적인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이란 생각이 든다.
     
4. 정부와 국민들의 심각한 의료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현명한 판단을 간구한다.
 
의료인과 의료의 가치를 폄훼하고 석탄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서 죽어가는 생명이 살아나고 건강이 지켜질 수는 없다. 사회가 발달하고 안정될수록 최고의 가치가 행복과 건강한 삶이고 그 중심에 수준 높은 의료와 복지가 있다. 따라서 이를 지켜주는 전문 의료인과 의료의 가치는 국민 각자를 위해서도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스스로를 사르고 견디며 어렵게 세워놓은 세계 일류의 의료는 향유하면서도 애써 이를 외면하고 단순 논리와 강권으로 의료를 난도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너무 크다. 스포츠나 예술, 산업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 최고라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노력과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소중한 결과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의료가 위급한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음에도 뚜렷한 목표도, 근거도, 방법도, 결과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여전히 문제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는 과연 정부의 확고한 입장과 계획이 무엇이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심히 의구심과 염려가 커지고 있다. 의료는 하다가 안 되면 말고 쉽게 때우고 대체할 수 있는 소품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의료개혁은 결코 어려울 것이며 언제 더욱 심각한 결과가 닥쳐올지 심히 위험하고 우려가 된다. 

훌륭한 기관사라면 기차가 출발을 하였더라도 기차에 이상 증상이 감지되면 신속하게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승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기차를 세워서 정확하게 조사를 하여야 할 것이며, 고장의 부위나 정도에 따라서는 일시 비난을 받더라도 기차를 되돌려 갈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기의 한국의료를 위해 더 이상 실기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과 신속한 결단을 간곡하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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