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고등교육기관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 입법예고
내년 신입생 국시 응시자격 박탈 위험, 불인증 판정 유예로 회피 시도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인증 유효 연장, 의평원 지정 취소 가능성도?
교육부가 대규모 재난으로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악화된 경우, 의과대학이 인증평가에서 불인증을 받더라도 그 처분을 1년간 유예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입학정원이 증원된 의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주요변화평가'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다.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평가와 인증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내놔, 정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의평원 인정기관 지정취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11월 4일까지 의견수렴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의료과정운영학교의 평가·인증에 관한 특례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평가·인증 유효기관 연장 ▲평가·인증 기준, 절차, 방법 변경시 사전예고제 의무 규정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불인증 판정 1년 유예...의평원 평가 무력화 시도
의대 평가·인증 특례 규정의 핵심은 불인증 대학에 대한 처분 유예다.
구체적으로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해 의료과정운영학교의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되는 경우, 인정기관이 불인증을 하기 전 1년 이상의 보완기간을 부여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현재 의대 평가인증 인정기관들은 학생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로 불인증 판정 대신 1년의 보완기회를 부여하는 인증체계를 자체적으로 도입·운영하고 있으나, 실제 적용여부는 인정기관이 결정하게 되어 있다"면서 "이에 국가 중대 의료정책 추진 과정에서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경우 등에도, 인정기관이 불인증을 하면 학교와 학생의 막대한 불이익이 예상된다"고 규정 개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학의 자체적인 노력과 상관없는 요인으로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되는 경우 보완기간동안 교육여건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한 교육부는 "이를 통해 학교와 학생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국가의료인력 양성의 차질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의평원의 증원대학 주요변화평가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사실상 의평원 평가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의과대학이 의평원으로부터 불인증 판정을 받으면 당해연도 신입생들은 졸업 후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다.
개정안대로 불인증 판정을 의무적으로 1년간 유예하도록 할 경우, 내년 증원 대학 신입생들은 의평원 의대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국시 응시자격 박탈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인증 연장, 의평원 지정 취소 가능성도?
개정안에는 인정기관 공백시 기존 평가·인증 유효기간을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사실상 의평원 업무 중단, 최악의 경우 지정 취소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이다.
개정안은 '기존 인정기관이 재지정 되지 않거나 지정·재지정이 취소되어 인정기관이 없는 경우 또는 인정기관이 평가·인증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중단 또는 폐지하여 평가·인증이 불가능한 경우 기존 평가·인증의 유효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해당 내용을 담았다.
공교롭게도 의평원은 현재 교육부로터 일종의 '조건부' 재지정을 받은 상태다. 교육부는 의평원 재지정 통보를 내면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합리성 제고, 인증판정위원회 판정단의 다양성 확보, 회계 투명성 확보 등의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이행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현재는 인정기관 공백 시에 대한 규정이 없어 인정기관 공백으로 평가·인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정부 재정지원 불가, 국가시험 응시 불가 등 학교와 사회에 막대한 불이익이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면서 "해당 규정 신설시 인정기관 공백으로 인한 대학의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증 기준 변경 사전예고제...논란에도 법령 명문화
이 밖에 개정안에는 평가·인증기준 변경 사전예고제 의무 규정도 담겼다. '평가 인증 기준, 방법, 절차 등이 변경되는 경우 최소 1년 전에 확정해 평가인증의 대상이 되는 학교에 알리라'는 내용이다.
앞서 교육부는 의평원 재지정 요건 중의 하나로 '주요 변화 계획서 평가 시 중간 평가를 포함한 평가인증의 기준·방법·절차 변경 시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하라'는 조건을 붙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과거에는 없던 요구로,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증원 의대 평가를 앞둔 의평원에 외압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교육부의 입법예고가 공고된 국민참여입법센터 사이트(바로가기)에는 반대의견이 폭주하고 있다. 의평원 무력화와 의학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의견자 '백ㅇㅇ'은 "이미 국제적이고 공정한 평가요건을 갖춘 의평원에 이권이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된다"며 "실제로 증원에 대한 준비가 잘 이뤄지고 있다면 불인증을 받을 까닭이 없을텐데 왜 인증기준을 낮춰야 하느냐. 우리나라 의사들의 수준과 실력을 스스로 낮춰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견자 '이ㅇㅇ'은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1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부치는 악법"이라고 했고, 의견자 '최ㅇㅇ'은 "의평원 독립된 기준으로 국제 기준에 맞는 의학교육을 감시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