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 정책은 후진국 의대 만들기 정책인가?

대한민국 의료 정책은 후진국 의대 만들기 정책인가?

  • 윤도경(재미 의사/전 고려대의대 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4.10.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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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경(재미 의사/ 전 <span class='searchWord'>고려대</span>의대 교수)
윤도경(재미 의사/전 고려대의대 교수)

한국에서 의대 교수를 하다가 고국을 떠나온 지가 10년이 넘었다. 미국에서 정착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직장이 있는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필수 의료를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인 대학병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따른 필수 진료를 하려면 경영진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의료보험에서 정한 수가가 워낙 적다보니 병원에서는 장례식장이나 화려한 쇼핑몰과 같은 비의료 수익에 열을 올렸고 의사들은 돈 되는 비보험 의료로 내몰렸다.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를 보충하려고 소위 3분 진료, 하루 100명의 환자를 처리하는 비인간적인 진료가 대학병원에 판을 쳤다.

많은 동료들이 정상적인 진료, 필수 진료로써는 적정 수익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미용과 성형으로 진출하였고, 근거 없는 비타민 요법이나 온갖 보신 정맥 주사와 같은 소위 돈 되는 진료에 내몰렸다. 

나는 건강검진 센터 운영을 맡았는데, 한국 특유의 무차별적인 검진이 환자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에 하는 우려가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나 하버드 부속 병원들을 방문했을 때, 그 어느 곳도 한국과 같은 무차별적인 검진을 하는 검진 센터를 운영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러한 우려가 굳어졌다.

미국의 유명 병원에서는 그 어떤 곳도 한국과 같은 집단 검진센터를 운영하거나, 불필요한 비타민 보신 주사를 하는 곳이 없고, 그 어떤 의사도 3분 진료를 하는 의사가 없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정상적인 진료를 해도 적정 수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를 하면 진료 내용뿐만 아니라 진료를 하는데 보낸 시간에 대해서도 비용을 청구할 수 있으니, 무차별적인 검진보다는 해당 환자에 특화된 검사를 선별해서 할 수 있었고, 비타민 보신 주사를 파는 대신 그것이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의료 위기는 사실 잘못된 정책이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정권 창출의 근거가 미약한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이 국민의 호의를 얻으려고 반자유주의적인 강제 보험 정책과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를 강행하고, 이후 정부에서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반시장적인 의료정책을 지속한 결과이다.

한국의 의료 수가는 미국의 메디케어 수가 체계를 응용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메디케어가 여러 의료 보험의 일부분일 뿐이지 한국처럼 의료 전체의 수가를 결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병원이나 의사는 메디케어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억지 가격으로 필수 의료 행위를 통제하다 보니, 비보험 진료, 피부 미용, 성형, 무차별 검진, 수많은 비타민 보신 요법, 비인간적인 3분 진료가 남발되게 된 것이다. 미국 의료에 깔려있는 선택의 자유 원칙을 무시하고 메디케어 수가 체계 껍데기만 한국의료보험에 무차별 적용하다 보니, 양심에 따른 정상적인 진료를 어떻게 보전해야 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의료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의대 신입생 숫자를 갑자기 2000명을 늘려서 내년부터 5000명의 의대 신입생을 뽑는다고 한다. 이는 많은 의사들이 왜 필수 의료에 근무하지 않고 있으며, 왜 험난한 과정을 마다않고 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러 떠나는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매우 잘못된 정책이다. 밑빠진 독이 있으면 빠진 곳을 메꿔야지 아무 물이나 들이붓는다고 독이 채워지겠는가? 

미국 의사 중에서 카리브해 의대 출신들이 꽤 많이 있다. 카리브해에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는데, 인구 수에 걸맞지 않게 의대 수가 많다. 이 의대들의 목적은 자국민을 위한 의사 양성이 아니고, 미국 의대 진학에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국 의사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익성 사업이다.

의료 위기에 대한 원인을 제쳐두고 갑자기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정부를 보면 대한민국을 카리브해 나라들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 것 같은 걱정이 들고, 이때를 기회 삼아 의대 증원을 하겠다는 대학들을 보면 의대생 교육을 수익성 사업으로만 보는 카리브해 의대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현 의료 위기는 지난 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부인 명품 가방 논란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고 의대 2000명 증원이라는 충격적이고 주술적인 요법으로 시작된 것임을 대부분의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을 억지로 유지하려고 하다보니, 정부 스스로 교육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국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의사를 만들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최근에 정부는 필요한 의대 수업 시간을 채우지 못해도 진급을 시키거나, 급기야는 의대를 5년으로 줄인다는 얘기까지 한다. 이런 것들은 의료 개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의료 후진국 만들기 정책일 뿐이다. 정부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황당한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을 속히 폐기하고, 이제라도 방향을 잡아서 제대로 된 의료 개혁을 이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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