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개발원, 사업 확산에 총력…보험업계, 1200억원 예산 편성
EMR 업체에 시스템 구축 비용 지원 걸고 의료기관 동의서도 요구
"보안이나 기술적 설명 없이 다짜고짜 참여 요청" 절차적 문제 지적
보험개발원이 실손보험 청구 서류 전송 시스템 구축에 협조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업체의 구축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업체들이 의료기관에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묻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일선 병원에는 정확한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지 않아 사업 추진의 앞뒤가 바꼈다는 지적이다.
이태연 대한의사협회 실손보험대책위원장은 11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기관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재차 강조하며 "정부가 EMR 업체를 활용하더라도 의료기관에 먼저 정확한 설득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개발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업이 시작되면 보험청구 서류 전송대행을 맡아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 형태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한다. 사업 참여 대상은 자체 EMR 시스템을 갖고 있는 요양기관이나 상용 EMR 솔루션 제공사, 즉 EMR 업체다.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요양기관 다수가 이용하고 있는 급여 청구 프로그램 개발 업체인 EMR 업체의 참여는 필수적인 상황.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약 12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들 예산은 시스템 구축비, 확산비 등에 쓰일 예정인다. 사업에 참여하는 EMR 업체에도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자 EMR 업체들은 정부 기관을 대신해 의료기관에 청구 간소화 사업 참여를 물으며 동의서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야지만 시스템 구축비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오는 25일부터 진료비 영수증 등 정보를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의무는 있지만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칙을 받는 법 조항은 따로 없다. 또한 보험개발원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핀테크 업체를 활용해 사업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단, 비용 지원은 24일까지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보인 곳만 해당한다. 보험개발원은 "시스템 확산 사업 추진으로 시스템 구축이 완료된 후에 발생하는 유지 보수 비용 등은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사업이 본격화되는 25일 이전에 최대한 많은 의료기관의 참여를 끌어내려는 포석인 셈이다.
서울 한 중소병원 원장은 "EMR 업체에서 정부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에 참여하라고 동의서 등 문서가 왔다"라며 "비용은 보험개발원에서 부담한다며 의료기관이 따로 낼 비용은 없다는 안내도 함께 했다"고 전했다.
경기도 한 중소병원장은 "사업 시기가 다가오는데 병원 참여도 저조하니 보험개발원이 병원에 직접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EMR 업체를 활용하려는 것 같다"라며 "그동안 의료계가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억지로 법을 만들어 놓은 터라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실손보험 청구는 외래, 입원이 발생할 때마다 요청이 있고 의료기관 서류가 외부로 나가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정보 유출 등의 위험도 뒤따른다"라며 "이에 대한 보안이나 기술적 설명 없이 참여를 요청하는 것은 절차에도 어긋나 보인다"고 꼬집었다.
EMR 업체가 의료기관에 요구하는 동의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사업 참여를 위해 보험개발원에 꼭 제출해야 할 서식 중 하나다.
한편 보험개발원은 시스템 구축 비용을 EMR 업체에 지급할 예정이지만 유지 보수비까지 지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추후 발생할 비용 부담은 의료기관이 져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의사단체 보험이사는 "EMR 업체들이 초기 비용을 보험사에 받는다고 하더라도 향후 지속적인 유지 보수비는 의료기관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EMR 업체와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비용 보상이 명확해져야 사업 참여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