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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락사와 한국 보라매병원 사건 -하-

일본 안락사와 한국 보라매병원 사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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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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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미숙한 사회가 남겨준 '살인의 굴레'

보라매병원 사건의 오류…
의학적 객관성 무시한 채
합병증 전문가 증언 없이
부검 소견만을 근거 판단
사적지견 배제 원칙 위배

한국 보라매병원 사건

의료윤리나 규제가 정립되지 않은 한국에서 보라매병원 사건의 첫 문제점(A)은 "이 케이스가 미국과 일본 등 외국의 존엄사 요건을 충족시켰나?"하는 것이고, 다음 문제점(B)은 "환자가족의 강요에 의한 말기중환자의 AMA(against medical advice. 의사충고와 상반된)퇴원이 어느 정도로 양형이유가 되나?"라는 것이다.

A. 연명의료중단: 존엄사라 부르는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의료중단을 뜻하며, 적극적 안락사는 네덜란드의 Euthanasia와 위의 일본케이스처럼 의사가 직접 극약을 투여하거나 또는 미국 오리건의 PAS(극약처방에 의한 의사보조자살)처럼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행하는 안락사를 말한다. 회복가능성 없는 말기환자에 대해 본인의사에 의한 연명의료거부를 허용하는 생전유서(Living will 또는 Advance directive)가 51개주에 법제화되거나 수용되어 있다. 환자에게 생전유서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고 생전유서가 없을 경우, 판단력이 결여된 환자의 연명의료여부는 대다수의 주에서는 일본의 관례처럼 근친자(NOK. next of kin)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최근 의협신문에 소개된 보라매사건의 판결요지를 보면 존엄사와 안락사를 혼동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재판관은 환자가 연명의료중단 허용케이스에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통해 상식적인 생명철학을 주로 피력하고 있다. 최종판결은 재판관의 양식에 달렸으되, 의학교육의 배경이 없고 의학지식이 결여된 재판관은 '사적지견의 배제'라는 판결원칙에 따라야만 한다.

참고로 미국법원의 의료문제 재판판결에 있어 '재판관(배심원)에 대한 교시(敎示. Instruction read to the jury)'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법의 원칙은 한국재판관(법관)에게도 마찬가지인 줄 안다.

<피고(의료인)가 합당한 의료행위를 했나 여부는 오직(only) 전문가증언(expert testimony)이나 또는 표준적인 전문직 의료행위라고 제시된 증거(evidence of professional standards of conduct presented)에 의해서만 결정해야 한다. 판결에 있어서 어떠한 사적지견(any personal knowledge)도 시도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런데 보라매병원 사건은 순조로운 수술시의 생존율에 대한 의사진술을 인용했으나, 합병증에 대한 전문가증언이 없고, 제시된 증거는 환자의 합병증을 입증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부검소견'이었다. 즉 판결문에서 격막외혈종(Epidural hematoma)제거수술의 예후에 관해 법정에서 Y의사(피고)가 말한 문헌상 순조로운 수술시의 회복확률 73%, 그리고 K의사(피고)가 말한 "만일 합병증이 없을 경우의 생존율 70~80%"라는 진술만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번 케이스처럼 만성알코올중독에다 심한 출혈성합병증이 가중한 환자의 회복확률은 0% 일수도 있는데, 그 방면의 전문가증언이 없다.

필자의 견해를 말한다면 100파인트 수혈이 필요했던 격심한 합병증을 동반한 케이스는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고, 만일 생존한다 해도 신체불구치매 아니면 식물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환자출혈은 추측컨대 만성알코올중독과 관련된 출혈성과 격심한 두개손상에 이따금 생기는 DIC(파종성혈관내응고병증)가능성이 크다. 부검소견으로 DIC를 진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부검에서 DIC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DIC를 배제한 재판관의 '논지'는 의학에 '무지'한 그의 '사적지견'에 불과하다. 수술 후 뇌증후가 일시 호전됐다는 기록하나만으로 환자의 예후를 판단하는 일은 의학지식이 없는 자의 견해이다. 뇌 외상에 일시현상으로 나타나는 '명료기간'(뇌 외상-격막외 또는 경막하의 혈종 등-에서 흔히 있으며, 일시적으로 뇌기능회복이 오는 현상이다. 손상을 입은 뇌세포가 회복되면서 뇌증후가 일시 호전되나, 다음에 뇌신경섬유의 손상으로 이어지면서 뇌기능은 더욱 악화된다)일수도 있으며, 이러한 증상판단에도 전문의의 증언이 아쉽다.

논고에서 치료중단이 환자의사에 반(反)한다고 추정했으나, 생전유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근친자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의학은 과학이고 의료문제재판에서 과학적 논거가 필수적인데, 보라매사건 판결문은 의학적 객관성을 무시하고 법관으로서 삼가야 할 사적지견만으로 판단했으니, 전적으로 '헛다리'만 짚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이 치료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으며, 환자사망을 의도적으로 용인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죄에서 살인방조죄로 경감해 준다고 했다.

환자예후가 위중함을 가족은 직감으로 느끼고, 살아나도 불구치매인생의 무익한 케어를 그들이 감당해야할 고민도 남의 일 같지 않게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족은 살인자가 결코 아니며 미숙한 의료사회의 희생자에 불과한 것이다.

B. AMA퇴원: 법원논고에서 AMA퇴원 때문에 사망했다는 듯이 언급했으나,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근래 '집에서 죽음'(Dying at home-Andrea Sanka지음)이란 책이 화제가 되고 있고, "집에서 죽는 옛날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을 정도다. 오래전 필자의 한국경험으로 사망이 임박한 말기환자는 가족요청으로 퇴원시킨 일이 흔했다. 그리고 치유가능한 중환자도 가족의 강제요청에 의해 부득이 퇴원시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경제적 이유(?)로 집에서 한방치료 받는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AMA퇴원은 규제에 따라 환자 또는 친권자서명으로 가능하며(참조:첨부한 시카고대학병원 양식), 문제가 될 케이스는 병원윤리위원회에 회부한다.

의협 법제이사가 논술한 '과제와 대책'처럼 한국에도 하루 빨리 의료윤리가 제정되고 의사들이 법적보호를 받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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