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사전심사제 도입등 의료계에 불똥
임상시험 통해 효과 안전성 검증하자 의견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우리들병원의 척추수술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우리들병원과 고 의원간의 고소와 맞고소가 이어지는 한편, 고 의원이 '노무현과 이상호 우리들병원장의 친분설'을 제기한 탓에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야간 정쟁의 씨앗이 됐다. 한편 우리들병원의 척추수술법(AOLD)이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를 두고 관련 학회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 의료계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는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
국감장 화두 '우리들병원'…현지실사 제기
지난 25일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장에서 김창엽 심평원장은 "우리들병원에 현지실사를 나가겠다"고 밝혔다. 물론 현재 우리들병원은 실사기준상 실사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부 장관에게 실사를 건의하겠다는 말이다. 이날 김 원장은 현지실사에 대한 확답을 내려달라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실사기준에 맞게 답변하라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요구 사이에서 진땀을 흘렸다.
고경화 의원은 이날 우리들병원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고 의원은 13일 복지부 국정감사 때부터 '노무현과 이상호의 우리들병원 신화'라는 제목의 정책자료집을 통해 우리들병원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AOLD(뉴클레오톰을 이용한 관혈적 척추간판전제술) 시술로 막대한 수술비를 챙겨왔다고 주장해왔다.
고 의원은 "우리들병원이 AOLD 시술의 근거가 담겼다며 제출한 6종의 외국 의대 교과서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며 "병원측이 허위 자료를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또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와 대한척추외과학회 모두 'AOLD시술의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내왔다"며 학술적인 근거를 내세워 목청을 세웠다.
AOLD 시술 의학적 근거 있나 없나?
척추신경외과학회와 척추외과학회 모두 "AOLD 시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척추신경외과학회는 25일 "AOLD에 대한 치료효과 및 비용효과 분석에 대한 어떠한 연구결과도 확인하지 못해, AOLD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척추외과학회 역시 26일 "AOLD 시술은 새로운 수술방법이 아니며 단지 째는 수술을 시행하면서 불필요한 뉴클레톰을 추가로 사용하는 사족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AOLD 수술은 해당병원과 그 계열 병원 및 연관의사들을 제외하고는 전세계 어느병원, 어느 척추외과 의사도 수술하지 않는 방법으로 환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부당한 의료행위"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반면 두 학회의 모학회격인 신경외과학회는 23일 고 의원에게 "특정 학회 의견만 참고해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라"며 불만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AOLD 시술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강삼석 신경외과학회장은 "고 의원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우리들병원을 지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못박고 "다만 신경외과학회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한신경외과학회가 지난 2002년 AOLD의 유효성과 타당성을 공식 인정, 보험수가에 대한 기준까지 제시하는 공문을 심평원에 제출했다는 점이다. 이에대해 신경외과학회 관계자는 "고 의원에게 보낼 학술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유보했다.
우리들병원 "정치적 이용 말라"
우리들병원은 척추신경외과학회와 척추외과학회의 'AOLD 불인정' 입장에 대해서 "척추신경외과학회 등은 AOLD를 교육받지 않았거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맞서고 있다.
AOLD 수술법은 굵기가 가늘고 끝이 둔탁한 자동흡입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섬유륜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수핵을 보다 잘 보존함으로써 수술로 인한 척추불안정이나 디스크성 요통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술법이란 설명이다.
병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신경외과학회도 지난 3월 심사평가원에 보낸 공문에서 "AOLD는 이미 기존의 인증된 관혈적 추간판 절제술과 뉴클레오톰을 병행한 것으로 문제점이 없다"며 "이 시술법이 기존 pituitary rongeur를 사용한 추간판제거술보다 결과가 양호하다는 보고가 제6차 국제 디스크내 치료학회 연례학술대회와 대한신경외과학회에서 발표됐다"고 밝혔다.
병원은 또 고경화 의원의 거듭된 공세에 당혹해 하면서도, 고 의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병원 의료진 일동은 27일 성명을 통해 "관련학회에서 충분하게 논의돼야 할 치료법이 정치권에 의해 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더이상 정치적인 공세와 논리에서 벗어나 관련 전문가 그룹에서 충분한 토의가 진행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척추수술 '사전심사제'로 옮겨 붙나
이번 사태는 처음에는 우리들병원의 특정 수술법에 국한되는 듯 했지만,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이 '척추수술 사전심사제' 도입이란 해법을 제시하면서 의료계 전체로 논란이 번져가고 있다.
AOLD 수술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척추 전문가들조차 '사전심사제' 도입에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척추수술 전체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과 결정을 침해하고 환자와의 신뢰를 깰 수 있기 때문.
신원한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장은 "의사가 노하우를 통해 소신 진료를 하는데 정부가 이를 통제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고, 사전에 일일이 척추수술을 심사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며 "의사와 환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상의한 뒤 소신을 바탕으로 한 수술이 이뤄지도록 하되, 추후 문제가 됐을 때 타당성을 심사하는 방안이 옳다"고 말했다.
현재 사전심사제가 적용되는 분야는 1992년 처음 도입된 조혈모세포이식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매월 초 요양기관으로부터 급여인정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신청받은 뒤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수술을 인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연간 300~500여건에 불과한 조혈모세포이식과 연간 13000여건에 이르는 척추수술과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전심사제 도입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도 있다.
조용은 영동세브란스병원 척추전문병원장은 "이번 일을 의료기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애초에 명확한 근거나 임상시험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덜컥 '비급여' 결정을 내준 심평원과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어 "사전심사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임상시험 등을 통해 사전에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한 뒤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자동흡입기를 이용한 현미경 척추간판 부분 절제술(AOLD)이란? |
AOLD(Autom ated Open Lumber Microdiscectomy)는 단순 디스크 절제술에서 변형된 최소 침습 디스크 절제술의 한 방법이다. 수술은 허리 한 가운데서 피부를 1~3cm 정도 절개, 근육을 옆으로 제친 뒤 뼈를 드릴로 갈아 입구를 만들고, 약 2mm의 구멍으로 자동흡입기를 넣어 터진 추간판 조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 때 사용되는 자동흡입기 '마이크로 2 킷'은 디스크 내부 압력을 감소시키고 터진 추간판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10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수술법은 뼈를 떼어 내고 칼로 디스크 부위를 약 5mm로 절개한 뒤 수술용 집게 등을 통해 터진 추간판을 제거하는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