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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코(Sicko)'에 대한 엉뚱한 생각

영화 '식코(Sicko)'에 대한 엉뚱한 생각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4.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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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중앙일보 기자)

18대 총선이 치러진 9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영화관 시네큐브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무어 감독의 영화는 사실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포스터의 '의료보험에 얽힌, 당신이 알아야 할 충격적 진실'이란 문구에 보건복지 담당 기자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부쩍 시끄러워진 '민영보험 활성화' 논의와 관련, 보건의료노조 등이 함께 보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터라 개봉 일주일 만에 영화관을 찾은 것이다.

자, 이번엔 내용 얘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눈물어린 사연들에 대해 "(민영보험 활성화로 인해) 대한민국에 닥쳐올 재앙에 대한 경고"로 보는 논조의 글들은 영화 홈페이지나 인터넷 매체에 가득하니 참고해 보길 바란다. 그 주장에 찬성하든 안 하든 무어 감독이 제기하고자 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통적인 접근방식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식 민영의료보험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웬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생생한 사례들이 주는 울림은 있지만, 미국인(특히 공화당)을 겨냥한 무어 감독의 문제의식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엉뚱하게도 이런 관점에서 영화가 더 눈에 들어왔다.

#1. 기자의 눈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무어 감독의 거친 취재 방식이 사뭇 눈에 거슬린다. 특히 캐나다와 영국·프랑스의 전국민의료보장 실태를 '자기 입맛에 맞는' 측면만 골라 보여주는 게 씁쓰름하다. 얼마 전 만난 캐나다인만 해도 병원 예약 후 진료를 받기까지 몇 달씩 걸릴 때도 있다며 내게 투덜댔는데, 무어 감독은 몇 군데 찾아본 캐나다 병원에서 진료를 30분 이상 기다리는 환자를 만나지 못한 것만으로 감탄한다. 게다가 쿠바에 미국인 환자들을 끌고 가서 보여준 '오버'라니…. 상영시간에 맞추고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하려고 편집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그래도 저런 식으로 기획 기사 썼다간 데스크에게 단칼에 날아갈 텐데.  

#2. 미국 연수생의 눈

연수를 가게 된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1년 간 지냈을 때의 경험이 아른거린다. 워낙 정보가 없어 교환교수를 다녀온 분이 추천하는 보험 상품에 무조건 가입하고 미국에 갔다. 하지만 보장 범위나 이용 방법을 잘 몰라 헤맸다. 욕실에서 미끄러져 다친 남편이 엄청나다는 미국 의료비 걱정에 X-레이 검사도 뒤늦게 받았는데,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100달러 이상은 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허탈해한 적도 있다. 어쨌든 이 영화 속 상황은 미국에 연수나 유학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맞부딪힐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를 위한 정보성 기사를 써보면 어떨까. 힐러리가 저렇게 고전하고 있으니 상황이 조만간 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나.

#3. 의사의 눈

의협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원죄(?) 탓이다. '내가 대한민국 의사라면 이 영화 속 의사들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들릴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영화 첫 머리에 등장하는 릭의 이야기부터 하자.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인 5000만명 가운데 하나인 그는 사고로 손가락이 잘린 뒤 병원에서 치료비가 6만 달러나 드는 장지는 포기하고 '1만2000달러짜리' 약지만 접합수술을 받는다. 아무리 보험 적용이 안 됐다지만, 또 손가락 접합이 제법 어려운 수술이라지만, 그런 거액의 치료비에 우선 기가 막히고, 그에게 그런 선택부터 강요한 의사(혹은 병원)에 할 말을 잃는다. 대한민국에선 절대 비슷한 일도 있을 리 없다.

무어 감독이 NHS(National Health Service) 시스템을 통해 전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에서 만난 의사의 말은 어떻고. 런던 그리니치 지역에 작은 집이 있고, 아우디를 몰고 다니는 그는 자신의 수입에 만족한다며 '1백만 달러짜리 집 3채에 멋진 차 5대, 최신 TV 7대'는 갖고 살기 원하는 미국 의사들의 욕심을 은근히 비꼰다. 개원의 한 달 평균 순수익이 866만원인 대한민국 의사들이 그런 탐욕을 부리는 건 아니지 않나.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냥 영화는 영화로, 가볍게 볼 걸 그랬다. 영화를 잘못 골랐나 보다.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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