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보건복지가족부가 '항혈전제 급여 기준 개선안'을 발표하자 금세 의학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장 압도적인 반응이 "말도 안된다"였다. "내 아버지라면 결코 플라빅스를 끊지 않겠다"에서부터 "그런 기준은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다소 과격한 반응들도 쏟아졌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하는 고시에 대해 학계가 불만을 표출했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 반발의 강도가 셌다.
이런 경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개정안 수립 과정에서 학계의 참여가 배제됐거나, 학계의 의견과 상반된 방향으로 결론이 도출됐을 경우다.
이번 사안은 전자에 가깝다.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오랫동안 개정안을 준비해왔고 전문학회 의견도 받았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학계 관계자들은 "그런 식의 의견을 준 적 없다"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의학계 한 인사는 "전문학회의 의견이 정부의 의도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심평원은 보험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으레 전문학회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게 되지만, 이렇게 취합한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이따금씩 전문가들의 의견에 배치되는 보험기준이 발표되는 이유다.
특히 이번 개정안의 경우 심평원 내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상근위원 중 항혈전제를 주로 사용하는 내과와 신경과 위원들은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가'의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어떤 때는 모학회에 자문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모학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세부학회에 자문을 요청하기도 한다. 의견 수렴 대상을 선정하는 뚜렷한 원칙이 없다보니 때때로 해당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학회가 배제되기도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이번 사안과 관련해 관련학회의 의견을 조율한 대안을 마련, 복지부에 제출했다. 불과 한 달 만에 7개 관련학회의 동의를 얻은 대안을 도출했다는 점은 복지부의 의견 수렴 절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복지부는 고혈압치료제에 대해서도 급여기준 일반원칙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부디 전문가와의 의사소통 원칙이 제대로 지켜져 이번과 같은 잡음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