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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리베이트 잡으려다 애꿎은 후원금 끊긴다

coverstory 리베이트 잡으려다 애꿎은 후원금 끊긴다

  • 김은아 기자 eak@doctorsnews.co.kr
  • 승인 2010.05.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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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의료계 안팎에서 리베이트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제약사의 공정경쟁 범위를 다룬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과 최초로 리베이트를 받은 사람까지 처벌하는 '쌍벌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나온 까닭이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의약품 투명거래를 위한 자율 협약'을 발표하고, 협약을 위반하는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깎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가하면 리베이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 제약사와 의사는 사회악으로 묘사되기 일쑤고, 자칫 현행 리베이트 규제의 불합리성을 말했다간 '리베이트나 받는 놈'으로 낙인 찍히고 만다.

이쯤되면 '좋다, 이젠 줘도 안 받는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의사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보자. 사회적 호의나 선의의 기부금이 정말 금지돼야 할 대상인가?

일본 보다 엄격한 규제…기부행위 위축 불가피

이번 쌍벌제와 공정경쟁규약과 관련해 의료계가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리베이트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명백한 처방의 댓가로 판단할 수 있는 리베이트는 금지하더라도, 학술 지원 활동을 비롯한 정상적인 판촉활동은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기부행위'다.

공정경쟁규약은 기본적으로 제약사와 요양기관 또는 학술단체간 상호작용을 금지하되, 특별히 언급한 부분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따른다.

한국제약협회의 '공정경쟁규약 및 세부운용기준 개정 FAQ'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규약에서 규정하는 활동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기부행위를 포지티브 시스템에 따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이다.

가장 엄격한 규약을 채택하고 있다는 일본의 예를 살펴보자. 2005년 개정된 일본의 공정경쟁규약은 "의료기관 및 의료담당자와 별개의 단체 등에 대한 기부는 본래 규약에서 제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별개의 단체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의료담당자로 구성된 단체에 대한 기부의 경우 의약품 거래를 부당하게 유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지에 따라 허용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널리 사회 일반에서 인정되는 기부금, 업계단체가 행하는 기부금, 재해 등에 대한 기부금 등은 규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기부행위를 반드시 제3자의 심의를 거쳐 집행해야 하고, 제약사가 수혜자를 지정할 수 없도록 한 국내 공정경쟁규약과의 원칙 및 방향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학술활동도 리베이트?

현재 국내에서 기업(법인·단체 등 포함)의 기부행위를 제한하고 있는 법은 정치자금에관한법률(정치자금법)이 유일하다.

국내 사정과는 달리 미국·일본 등의 선진국은 정치자금에 있어서도 특정 정당에 대한 기업의 후원을 허용하는데, 규제 위주의 법률을 강화하는 것보다 후원 내역을 공개하는 등 집행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부경복 변호사(TY&Partners)는 "리베이트나 공정경쟁규약이 보건의료산업에만 특수하게 적용된 규제인 것은 맞다"며 "통상적인 기부가 불특정 다수의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보건의료 분야의 기부행위는 서비스에 대한 지불자인 국가나 환자가 아니라 의사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주어진다는 측면에서 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변호사·연세의대 교수)는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금지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요양기관이나 의료인 단체(학회 등)가 제약사에 무리하게 기부금을 요구한다면 공정거래법 상 불공정거래행위인 '거래상 지위의 남용'에 해당할 수 있지만, 제약사의 모든 기부행위를 원칙적인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이 개입됐다는 설명이다.

박 이사는 "요양기관이나 학회 등은 공공성을 띠는 측면이 있고, 사회가 그 활동을 유지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면서 "처방 대가성이 있는 특정 기부행위는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기부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 의학계의 종주단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의학회는 13일 보도자료를 내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거래규약을 정면 반박했다.

의학회는 "이 규약이 의학 연구의 기본이 되는 학술 활동에 관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어, 국가 의학 연구 발전과 의료 경쟁력 확보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며 "학술 활동과 의약품의 유통질서를 무분별하게 관련짓는 것은 규제 위주의 편의적인 발상이며, 자칫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대한신장학회의 대국민캠페인 ⓒ의협신문 김선경

비지정 기부…기부자 의도 반영 못해

학술·연구단체 등이 제약사로부터 받는 기부·후원금이 처방 대가성을 띤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차지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공정경쟁규약에 따르면 제약사의 기부행위는 '비지정 기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비지정 기부란 기부자(제약사)가 수혜자(학술·연구단체 등)를 지정하지 못하고 제3자에 기부금을 기탁하면서 수혜자 선정을 의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할 경우 기부금 수수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부금 자체가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기부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에 기부자의 의도와 목적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박형욱 이사는 공정경쟁규약의 기부행위 조항을 "절차적으로는 허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금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제약사 기부금 받으려면 줄 서야 하나

문제는 공정위와 제약협회가 기부행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한 나머지, 현재 학회 등이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의 상당수가 기부행위에 해당돼 규약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학회가 제정한 각종 학술상은 물론 대국민 캠페인·교육사업 등을 차질없이 진행하려면 일정 부분 제약사의 후원금을 받아야 하는데, 기부금 총액 자체가 줄어버리면 한정된 금액을 두고 학회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기부행위에 대한 심사를 담당하는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회가 분명한 기부금 배분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향후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개 학회가 총 1억원 규모의 후원금을 요청한 반면 조성된 기부금 총액은 5000만원이라고 치자.

5000만원을 10개 학회에 골고루 나눠줄 것인지, 학회 회원 수가 많은 순서로 지원할 것인지, 요청 금액이 적은 학회부터 지원할 것인지는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다.

이때문에 의학회는 "기부 대상이 되는 의약연구 단체를 포괄하고 이 단체들의 모든 학술대회 지원에 대해 그 적절성을 심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라며 "개개의 학술대회를 심의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학술단체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경복 변호사는 "전체 사회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 기부행위를 위축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학술활동·연구발전 저해 등의 불이익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법리적 판단 보다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의견 없는 공정경쟁규약 실효성 ↓"

대체 이렇게 중요한 규약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왜 의료계의 의견은 이토록 철저히 배제됐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경쟁규약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은 제약업계 종사자들이 부당고객유인행위를 막기 위해 자율적으로 지키기로 한 일종의 약속으로, 엄격히 말하면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공정거래법)은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규약을 정해 공정위에 심사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위의 승인을 거친 공정경쟁규약은 사실상 법적·행정적 효력을 발휘한다. 다만, 이 규약에 따라 법적·행정적 처벌을 받게 되는 대상은 제약사로 한정된다. 

박형욱 이사는 "공정경쟁규약의 수범자(규범의 적용을 받는 사람)는 제약사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나 학회가 규약을 위반했다고 해서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같은 측면에서 거래 행위의 당사자라고 볼 수 없는 학회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율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는 "규약 자체가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이미 규약이 발표된 지금에 와서 의료계의 입장이나 의견을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자율규약은 관련 이해당사자가 모여서 잘 지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번 규약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인·기관 규약 위반, 위법은 아냐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의료기관이나 학회가 규약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은 크게 9가지로, 제약업계에 적용할 수 있는 유형은 '부당한 고객유인'과 '거래상 지위의 남용' 등이 대표적이다. 부당한 고객유인이란 사업자가 고객에게 과대한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하는 등 경쟁 회사의 고객을 자신과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로, 보통 제약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반면 거래상 지위의 남용은 보통 (의약품)구매자가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판매자에게 이익제공을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제공하는 불공정거래 유형이다.

현행 공정경쟁규약의 경우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에 대한 규제에 해당되지만, 거래상 지위의 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경복 변호사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이익 제공을 요구했는지 여부는 정황 상 증거나 근거 자료 등을 참고해 판단할 수 있는데,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수준 이상을 무리하게 요구했다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강요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수준은 공정경쟁규약에서 규정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의료인의 규약 위반이 곧 위법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쌍벌제 의료법 통과…이젠 시행령 싸움

리베이트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은 쌍벌제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쌍벌제가 통과되기 이전에도 의사가 리베이트를 요구한 경우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의 남용에 해당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거나 검찰에 고발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제약사에 경제적 이익 제공을 강요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처방 대가성이 있는 경제적 이익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때문에 쌍벌제에 반발하는 의사들은 '헌법소원'까지 거론하며 쌍벌제 도입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가 보는 승소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부경복 변호사는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처벌은 '의약품 채택·처방유도 등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을 받는 경우로 한정되기 때문에 충분한 법리적 검토는 필요하겠지만 쉬운 싸움은 아니다"라며 "그보다는 의료계가 전문가의 입장에서 (형사처벌에 대한) 위험성을 줄이면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은 6월 중으로 마련될 예정이며, 공정경쟁규약은 연말께 개정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법에서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은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설명회 ▲대금결제조건에 따른 비용할인 ▲시판 후 조사 등의 행위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의 경제적 이익 등인 경우를 말한다.

처음에는 여기에 '기부행위'도 포함됐지만, 기부행위를 포함시킬 경우 지나치게 허용 범위가 넓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따라 최종 통과된 법안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시행령에 기부행위가 포함될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형욱 이사는 "모법의 조문에서 경제적 이익 '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처방 대가의 성격만 아니라면 추가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복지부는 어떠한 기준으로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게 될까.

부경복 변호사는 "현재의 공정경쟁규약을 기준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의료법 시행령은 형사처벌의 기준이 되는 만큼, 자율규약 성격의 공정경쟁규약 보다는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의 범위가 더 넓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냉정한 얘기지만, 리베이트 쌍벌제는 이미 의사들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끝나버렸다는 자괴감도,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으리라는 자만감도 아직은 때가 이르다. 리베이트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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