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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의사여서 힘들었다"

"여자라서, 의사여서 힘들었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5.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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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출신 박영숙 분당구청장

▲ ⓒ의협신문 김선경
"병원에선 여자라는 사실이, 공직사회에서는 의사라는 출신이 발목을 잡더군요."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청장으로 임명돼 2일부터 공무를 시작한 박영숙 청장. 보건소에서 구청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의사출신 보건소장이 구청장에 오른 첫 번째 케이스다. 분당구청 청사 2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 청장의 모습에선 부드러움과 강단(剛斷)이 동시에 느껴졌다.

구청장을 맡게 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를 주신 이재명 시장께 감사드린다(※성남시는 광역시가 아닌 기초자치단체여서 산하 구청장은 시장이 임명한다). 보건소장만 20년 가까이 했다. 지금까지 보건행정만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광역행정을 해야 한다. 부담이 크다. 나에 대한 구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다.

일찌감치 공직사회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계기라도?
인턴 수련 중에 아기를 가졌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엔 병원에서 여의사가 임신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욕 먹을 짓'을 한 것이다.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와 차별이 어찌나 서럽던지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어 짐싸들고 경기도 파주시 보건소에 관리의사로 들어갔다. 그게 1989년도 일이다. 그렇게 보건소와 인연을 맺어 1993년 고양시 일산보건소장을 시작으로 경기도 지역내 보건소장을 두루두루 맡게 됐다.

구청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원래부터 갖고 있었나?
솔직히 말해 구청장 꿈을 키운 것은 96년경부터였다. 보건소장을 하다 보니 더 '큰 거'를 하고 싶어지더라. 행정은 행정전문가만 해야 한다는 편견도 깨고 싶었다. 몇 년 전에 안산시에서 구청장 제의가 있었는데 사양했다. 남편이 안산에서 근무하는데 서로 불편할 것 같았다(※박 청장의 부군은 현재 안산시립노인전문병원 원장을 맡고 있는 석승한 원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를 지냈으며 대한노인신경의학회 홍보이사로 활동중이다). 구청장 꿈을 15년 만에 결국 분당에서 이루게 됐다.

공무원 사회에서 의사라는 배경은 장점인가, 단점인가?
의사가 무슨 행정능력이 있겠냐라는 편견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그런 시각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의사라는 직업이 공무원으로 일하는데는 별로 도움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자꾸 부딪치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 '행정이 별거냐?' 하는…. 남들 다 하는데 의사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 특히 생명공학이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21세기에는 의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와 행정이 접목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 ⓒ의협신문 김선경
구청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내년 안에 분당구를 '건강문화도시'로 WHO에 등록해 분당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 것이다. 신도시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민들이 각자의 문화와 건강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활기찬 도시로 키우고 싶다. 구청의 업무라는게 대부분 민생관련 민원 처리 업무다. 어디에 주차 단속 좀 해달라, 플래카드 떼어 달라 등등. 쓰레기 무단 투척 민원도 자주 들어오는데, 얼마 전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다. 쓰레기 상습 투기 지역을 묶어서 '아름다운 거리'로 조성해 볼 계획이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화단을 가꿈으로써 쓰레기 대신 꽃이 만발한 거리를 만들고 싶다.

공직사회 진출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아직도 '선민의식' 갖고 있는 의사들이 많다. '잘난 내가 어떻게 너랑 일을 하나?' 이런 생각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공직에 오면 안된다. 주위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의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교육·수련과정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만 먹는다면 의사는 어디에 진출하든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가정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막 추구하다 보면 가정을 소홀하게 되기 싶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가정을 끌어안고, 식구들에 최선을 다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9시 통행금지'를 이 악물며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박영숙 분당구청장은 1955년생으로 원광의대를 졸업(77년)하고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90년)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보건사회국 보건과장(99~2002년)을 거쳐 경기도 환경보건국 보건위생과장, 안산시 단원구 보건소장, 성남시 분당구보건소장, 성남시 수정구보건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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